[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스모킹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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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뉴스
  • 승인 2024.08.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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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킹 룸

                                    장인희


수신도 송신도 필요 없는 밀폐된 곳
조였던 몸을 풀고 위안을 마시는 곳
내뱉은 자욱한 연기가 저항처럼 고이는 곳

어쩌면 한 끼 식사 그보다 배가 부른
가끔은 지폐 몇 장 그보다 힘이 되는
밥줄에 단단히 매인 넥타이도 풀곤 하는

몰락한 전설처럼 다 저문 소문처럼
몇몇은 변방으로 유배된 지 이미 오래
오래된 끽연의 기억이
비를 받아먹고 있다

-계간 《가히》(2024년 가을호)

【시인 소개】
장인희 / 2024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백수문학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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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나 공항의 흡연실 풍경은 매우 황량합니다. 두어 평 될까 말까한 공간에 재떨이는 꽁초로 수북하고, 담배 냄새에 절은 부연 공기 속에서 담배를 피워 문 남녀들이 아무 말 없이 서서 담배만 뻑뻑 피워대다가 반딧불처럼 사라지지요. 
하지만 그런 조악한 흡연실일지라도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였던 몸을 풀고” 한 숨 돌리는 여유와 여백의 시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그들에게는 한 개비의 담배가 한 끼 식사보다 배가 부르고 지폐 몇 장보다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흡연자들에게 흡연자들은 오로지 지탄과 혐오의 대상일 뿐 이해와 공존의 대상이 아닙니다. 담배연기는 곧 발암물질 덩어리라는 인식 탓에 흡연은 이웃까지 병들게 하는 미개와 야만의 비도덕적 행위로 간주합니다. 
흡연을 권장하거나 미화할 의도는 추호도 없습니다. 하지만 보건(保健)만이 유일한 신앙이 돼버린 이 시대, 설령 이웃일지라도 담배연기 한 줄기 용납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비정한 인심과 강퍅한 세태는 담배연기보다 더 숨 막힙니다. 건강한 세상은 타인에 대해 이해나 양보 없이 맑은 공기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김남호 / 문학평론가, 박경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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