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권선희
울 영감 내 하나 보고 동쪽 갯가로 왔지. 전라도 놈이라꼬 설움도 마이 받았다만 참말로 악착같았지. 쉰일곱에 갔으이 삼십년도 넘었다. 쪼매 더 살았더라면 싶지. 나라에서 돈 주지, 교회서 일주일에 한번씩 따복따복 반찬 날라다 주지, 논둑 무너졌다꼬 신고만 하면 퍼뜩 와가 쌓아주지, 명지한의원이고 성모한의원이고 천원짜리 한장이면 침 맞고 부항에 쑥뜸까지 뜨잖나. 그란데 우째 생각하믄 일지감치 잘 가셨다 싶기도 하다. 동네마다 멫번이고 수술하고 비비 말라가매 버티는 목숨이 천지다. 인자는 죽는 기 무서븐 기 아이다. 가고 자파도 못 가는 기 아득한 기다. 갈 때가 됐는데 안 갈라꼬 용을 쓰는 그거이 젤로 슬픈 기다. 그라고 보믄 밥 잘 잡숫고 하룻밤 새 후딱 건너가삐린 울 영감은 참말로 큰 복을 받은 택이지. 그쟈?
-계간 《창작과비평》(2024년 가을호)
【시인 소개】
권선희 / 1965년 강원 춘천 출생. 1998년 『포항문학』으로 등단. 시집 『구룡포로 간다』 『꽃마차는 울며 간다』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등이 있음.
------------------------------------------------------------------------------------------------------------------------------------------------------------------------------------------------------------
국제연합(UN)이 정한 바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를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1%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24년 올해 19.2%로 이미 초고령사회가 임박했습니다. 하지만 시골은 오래전에 초고령사회가 됐습니다.
노인복지정책으로 노령수당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혜택들이 주어집니다. “천원짜리 한장이면 침 맞고 부항에 쑥뜸까지 뜨”는 세상이 됐습니다. 교회에서 “따복따복 반찬 날라다 주”고, 논둑 무너지면 곧바로 쌓아줍니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멫번이고 수술하고 비비 말라가매 버티는 목숨이 천지”인 세상이 됐지요. 하지만 문제는 연명(延命)이 아닙니다. “가고 자파도 못 가는 기 아득한 기”고, “갈 때가 됐는데 안 갈라꼬 용을 쓰는 그거이 젤로 슬픈” 시대가 됐습니다. 숨 쉬고 있다는 것뿐 ‘삶의 질’을 논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장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옛사람들은 복 중에 제일 큰 복은 ‘죽는 복’이라고 했습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잠자듯이 떠나는 삶을 바랐지요. 한때는 ‘웰빙(well-being)’을 화두로 삼았지만 지금은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시대가 됐습니다. ‘잘 죽는 것이 곧 잘 사는 것’이라는 이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김남호 / 문학평론가, 박경리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