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일 칼럼] 효도와 사랑이 신비가 아닐까?       
[박영일 칼럼] 효도와 사랑이 신비가 아닐까?       
  • 하동뉴스
  • 승인 2024.09.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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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의회 7·8대 의원
(교육사회위원장) 박영일

올해도 며칠 후면 아직은 설과 함께 전통이 남아 있는 음력 8월 15일 추석이다. 5일이라는 연휴로 해외여행 가는 사람으로 공항은 붐빌 테고 국내 여행을 계획한 사람도 바쁜 걸음을 할 것이다. 심각한 기후 변화로 가을의 시기가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한 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계절이라 가장 풍성한 명절이며 “중추절” “개배” “가위” “한가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대 사회의 풍농 제에서 유래되었으며 신라, 고려시대에도 추석 명절을 쇠었고 조선시대에는 국가적으로 선대왕에게 추석 제를 지냈다는 문헌의 기록도 있다. 추석날 아침에는 각 가정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간다. 그동안 돌보지 못한 선조들의 안식처를 점검하고 벌초도 한다.

차례 상에는 햇곡으로 준비하며 일 년 동안 무탈의 고마움을 조상에게 전하기도 하는 명절이다. 씨름, 소 놀이, 거북놀이, 줄다리기 등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다양한 민속놀이로 화합의 장을 만들고 그날의 추억을 영원히 가슴속에 묻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추석이 단순한 농경 생활 속에서는 없어서 안 될 문화의 한 페이지였지만 이젠 산업화 시대를 거쳐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지금, 추석이라는 명절의 현주소는 아쉽게도 쉬는 날, 여행가는 날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좀 더 세월이 흐른 후 국어사전에나 수록되는 아픔의 시간이 올까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 세대만이라도 부모님과 고향을 사랑하고 찾는 고유의 명절로 존속시키는 데에 지혜를 모으는 데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 어려운 시절 자식들의 안녕과 성공을 위해 평생을 희생만 한 부모님의 “사랑 고픔” “외로움” “그리움”을 헤아려 보자. 무엇을 한들 만족할 순 없겠지만 외로움은 이웃이, 친구가 달래줄 수 있겠지만 사랑과 그리움은 오직 그대들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지 않은가?

얼마 전 아내를 배려하고 끔찍이 사랑하는 감동의 글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내용인즉 한 젊은 여인이 면허 취득한 지 얼마 안된 상태에서 도로에 운전 연습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툰 운전으로 다른 차와 추돌이 있었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었지만, 차량은 상당히 파손되었다. 남편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불안하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사고가 나서 경황이 없었지만 일단 보험회사에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에 차 안의 “콘솔” 박스에 보험증서를 찾던 중 메모지를 발견했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만약에 혹시나 차에 무슨 일이 생기면 기억해요.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지 차가 아니라는 걸!” 생각지도 못한 남편의 배려와 따뜻한 사랑의 글귀에 아내의 가슴은 뭉클했고 진정한 사랑과 감동에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고 한다. 정말 아낌없는 아내 사랑이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편이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아쉬운 것은 오늘 세대에는 아내와 자식에게는 아낌없는 사랑을 주고 있지만 부모님께는 너무나 소홀하다. 그대들이 아내와 자식에게 주는 큰 사랑 중 조금, 아주 조금 부모님께 사랑을 나눠드리면 살맛나는 세상이 되지 않겠나?

“그리움”에 헤어나지 못하는 부모님은 나의 근원이다. 오늘날까지 아낌없이 나를 위해 헌신한 부모님께 이번 추석에 용돈 봉투 아닌 정겹고 예쁜 마음 듬뿍 담은 사랑의 봉투를 아내와 함께 직접 드리면 참~뜻깊고 영원히 기억에 남는 명절이 될 텐데 … 19세기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트웨인”은 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눈”도 “지성”도 아니고 오직 “사랑하는 마음”뿐이다. 라고 했다. 세상에서 존경받는 인물은 모두 사람에 대한 존중과 경의를 품고 있다 했으며 그들은 인간의 가치를 알기에 사람을 수단으로 삼아 목적을 이루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쁘게 해주기를 바라면 일평생 기쁨이 없다고 했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면 일평생 나에게 기쁨이 넘치고 이것이 사랑의 신비라 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사랑하며 기쁨을 주는 것이 진정 사랑의 신비가 아니겠나? 바쁜 세상 매일 매일은 아닐지라도 자식보다 부모님께 사랑과 기쁨을 아낌없이 또 아낌없이 준다면 행복하고 걱정 없는 건강한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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