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왜가리, 승!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왜가리, 승!
  • 하동뉴스
  • 승인 2024.09.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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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승!

                                         변희수

한쪽 발 들고
서 있는 왜가리
내가 보는 거 알고
계속 한쪽 발로만 서 있는 왜가리
내가 안 볼 때
얼른 발을 바꾼 왜가리
한쪽 발에 쥐가 나도
꼼짝 않는 왜가리
물속만 뚫어지게 노려보면서
먼산이나 보는 척
여유만만한 왜가리
내가 졌다 왜가리

-계간 《시하늘》(2024년 가을호)

【시인 소개】
변희수 / 2011년 <영남일보>,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시민의 기분』 외. 동시집 『가끔 하느님도 울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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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다리로만 서서 커다란 물음표를 한 채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왜가리의 모습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마치 삼매에 들어 있는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연상케 합니다. 
지금 나는 왜가리를 보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그는 한쪽 발로만 서 있습니다. 저 왜가리는 나를 의식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내가 보는 거 알고/계속 한쪽 발로만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내가 안 볼 때/얼른 발을 바”꾸기도 합니다. “한쪽 발에 쥐가 나도/꼼짝 않”습니다. “물속만 뚫어지게 노려보면서”도 내가 볼 때는 얼른 “먼산이나 보는 척” 딴전을 피웁니다. 필시 저 왜가리는 나하고 눈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시인은 항복합니다. “내가 졌다 왜가리”.
시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어떻게 보느냐가 어떤 시를 쓰느냐로 귀결되는 거지요. 심각하고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면 심각하고 진지한 시가 나오고, 천진난만한 눈으로 바라보면 천진난만한 시가 나오지요. 그런데 시는 진지하고 심각하다는, 그래서 골치 아프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독자가 많습니다. 아무런 교훈도 메시지도 없는 이런 시는 얼마나 재미있고 상쾌한가요.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신기하고 재미있지요. 내 눈이 곧 내 세계를 결정합니다.

(김남호 / 문학평론가, 박경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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