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며
이성선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랴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리
- 『이성선 시전집』 (시와시학사, 2005)
【시인 소개】
이성선 / 1941~2001. 강원 고성 출생. 1970년 《문화비평》으로 등단. 1972년 《시문학》에 재추천. 시집 『시인의 병풍』 『하늘문을 두드리며』 『몸은 지상에 묶여도』 『산시』 등이 있음. 강원도 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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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희망의 메타포이다. 삶이 칠흑같이 막막할 때 별빛은 얼마나 큰 위안이었겠는가. 그런데 시인은 희망을 넘어서 순수함의 상징으로 별을 노래한다. 너무 별을 자주 쳐다보아서 혹시라도 별들이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염려한다. 별뿐만 아니라 하늘도 너무 쳐다보아서 때 묻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왜 시인은 그렇게도 별을 쳐다보고 하늘을 쳐다보았을까? 별과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랬을까. 아마도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별을 보고 하늘을 보았으리라.
사는 일에 멀미를 느껴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에서 바라본 하늘빛이나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던 밤하늘의 별빛은 시인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지독한 역설이다. 시인은 별빛/하늘빛의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리” 하고 되묻는다. 이 또한 역설이다. 비록 돈은 없지만 ‘푸른 하늘과 빛나는 별이 있어서 나는 가난하지 않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너무 밝아서 짙은 어둠이 없다. 어둠이 없어서 제대로 별을 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별이 더렵혀질 만큼 쳐다보려는 사람조차도 없다. 현대인들이 별을 찾지 않는 것은 삶이 고통스럽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병들어서일까.
(김남호 / 문학평론가, 박경리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