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연재]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 하동뉴스
  • 승인 2019.06.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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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그물은 넓고 넓다
天網恢恢(천망회회라)

天之道(…) 천지도
不召而自來(불소이자래)
默然而善謀(묵연이선모)
天網恢恢(찬망회회)
蔬而不失(소이불실)

자연의 도는 (…)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고 잠자코 있어도 잘 일한다. 하늘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어도 어느 것도 빠져 나가지 못한다. 노자 73장 참조

시성으로 칭송받는 두보께서 한 벗과 이별을 읊은 시 속에 나오는 ‘일월롱중조(日月籠中鳥)’라는 유명한 시구를 아시는지? 해와 달도 조롱 속의 새라. 이렇게 읊조리다 보면 절로 천망회회라더니, 저 공중에 떠 있는 해와 달도 하늘그물에 든 한 마리 새로구나! 이렇게 가고 남은 이별의 정한이 한량없이 마음의 조롱 속에 걸리게 된다. 하기야 하늘그물은 넓고 넓다는 노자의 말씀을 두보께서 몰랐을리 없을 터인지라 천망을 조롱으로 살짝 바꾸어 애달픈 이별을 더욱 절절히 읊어두었지 싶어진다. 한 세상 살아가며 이런저런 온갖 이별을 겪지만 우리 역시 저 일월처럼 여전히 한 조롱 속에 든 새들이 아닌가! 어느 것 하나 천망을 떠날 수 없듯이 조롱을 떠날 수 없는 새인지라 서로 이별한들 한 그물 속이요 한 조롱 속이라는 큰마음이 생겨나 이별의 설움을 행궈낼 수 있겠다.

우주란 조물주가 쳐놓은 그물 같은 것인지라 우주를 천망이라 부름은 안성맞춤이다. 이 땅덩이가 속해 있는 태양계는 물론이고 저 머나먼 수천억 은하들까지 이 천망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해보라. 천망 안의 모든 것들을 크게 말하여 삼라만상이라 말해왔고 작게 말하면 일화라고 멋지게 불러왔다. 천망 속의 모든 것을 그냥 “한 송이 꽃‘ 이라 해도 된다는 것이다. 법신을 묻는 승(僧)에게 화약란 한마디 혓바닥을 얼렸던 운문선사의 그 꽃밭도 천망을 슬쩍 바뀌친 듯 들리기도 한다. 우주를 불교에서는 법신이라 한다. 이것은 무슨 꽃 저것은 무슨 꽃 이런저런 이름 대며 좀 안다고 혓바닥 놀리지 말고 그냥 꽃밭 하면 하나가 되어 꽉 막혀 먹통인 인간도 확 트여 환해질 수 있음이다. 그런데 사람은 간명한 것을 한사코 이리 꼬고 저리 꼬아 이렇게 몰아가 정답을 찾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인간에게 모르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고 날마다 다짐한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우주를 만들었는지 알아낼 수 있다고 떵떵거린다. 이미 태양계의 수명은 100억 연인데 그 반을 지났으니 앞으로 50억 년 남았다고 답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천망의 그물코 하나도 어림잡지 못한다고 하면 잠꼬대 말라며 업신여긴다. 인공위성을 태양계 밖까지 보내서 수만 가지 자료를 받아서 따져보고 우주를 좀 알게 됐노라 손뼉 친들 허공에 거미줄 친 거미의 꾀가 훨씬 먼저라고 하면 정말 뚱딴지같은 벽창우일까. 어쩌면 노자께서도 허공에 그물을 치고 먹잇감이 물리기를 숨어서 기다리는 거미를 보고 천망회회라는 말씀을 뽑아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천망은 거미가 쳐놓은 그물과는 다르다. 거미는 먹이를 잡자고 그물을 치지만 조물주의 그물은 그냥 조롱 같고 꽃밭 같다 여기면 된다. 조롱 속의 새는 먹잇감이 아니고 꽃밭 속의 꽃들도 꺾일 것이 아니듯 천망 속의 삼라만상은 하나같이 조물주의 자식들이다. 노자께서는 조물주를 상도의 조화라고 그 조화를 현빈이라 한다.

상도의 조화를 현빈이라 비유했으니 천망은 삼라만상을 실어주고 안아주는 어머니 품안이다. 현빈이란 삼라만상을 낳은 암컷이나 삼라만상의 어머니라는 말씀이다. 천망을 사람의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마련된 인간의 법망 따위와 견주어선 안 된다. 법망의 그물코는 세월이 갈수록 배어져 바늘구멍 같아지는데도 잔챙이만 걸리고 큰놈은 치고 나간다는 욕을 먹지만 천망은 고운 이 미운 이 가리지 않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것 없듯이 모두를 하나같이 안아주고 실어주는 품안이다. 그러니 사람의 세상이 속상하게 할 때면 ‘천망회회’라 속으로 뇌어볼수록 누구나 멍멍한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쉴 자리를 얻을 수 있다. <1장 끝>

<2장 시작)> 성인께는 정해둔 마음이 없다

■변하면 살고 멈추면 죽는 이치
樸散而爲器 (박산이기위기라)

樸散而爲器 (박산이위기)
聖人用之 (성인용지)
則爲官長 (즉위관장)
故大制不割 (고대제불할)
나뭇등걸이 쪼개지면 곧 기물이 된다.  성인이 그것을 이용하면 곧 관장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크나큰 마름질은 쪼개지 않는다.  『노자』 28장 참조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해 무엇하리.” 고산의 오우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고산께서 노래한 다섯 벗을 하나로 묶어 말한다면 ‘박樸’이라 할 수 있다. ‘박樸’이란 ‘본디대로의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삼라만상을 한 글자로 나타낸다면 그 또한 ‘박樸’이다. 이처럼 사람의 손을 단 한 번도 타지 않은 것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다 본디대로의 것이다.
1969년 7월엔가 미국이 쏘아올린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여 우주인 두 사람이 달 표면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면서 미국국기도 꽂고 달의 토양도 채집하는 광경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서울에서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엔가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 “이제 고산 선생의 오우가에서 달을 빼야겠어.”라며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전해주었다. 인간이 달에 내려 발자국을 남겼으니 달은 이제 사람의 손을 탔고 사람의 기물器物이 되어 갈 것이며 본디대로의 달은 이제 금이 가고 쪼개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참으로 산이 좋아 산에 가고 물이 좋아 물가로 나가 철 따라 산천을 만나 즐거움을 나누며 살고 있다. 산천보다 더 좋은 벗은 없다고 그 친구는 서슴없이 말한다. 그의 말은 한 점 거짓 없는 단언이다. 그 친구가 고산 선생의 오우가를 걸핏하면 중얼거려도 싫증나게 들리지 않는다. 자연을 벗 삼아 노님이 멋이 아니라 몸에 배어서 그런 중얼거림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한 번은 충주 근방으로 수석 주으러 갔노라고 그 친구에게 말했다가 치도곤을 당한 적이 있다. 왜 있는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게 둘 것이지 주워다 씻고 닦고 기름 발라 좌대 위에 얹어놓고 멋대로 명명命名하여 방안에 두느냐고 나를 혼내 주었다.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닌지라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돼야 했었다.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 본디대로의 돌멩이도 사람이 주워다 좌대 위에 앉혀놓고 수석이라 건방떨면 자연의 돌이 그만 사람의 돌이 되고 만다. 사람의 것이 아닌 것이 자연 즉 ‘박樸’이고 그 ‘박樸’이 사람 손을 타면 ‘기器’가 됨을 잊지 마셨으면 한다.
나뭇등걸은 ‘박樸’이다. 그 등걸을 가지고 기둥도 만들고 서까래도 만들고 널빤지도 만들고 함지박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고 더는 쓸데없다 싶어지면 등걸을 도끼로 패고 장작개비로 쪼개서 땔감으로 쓴다. ‘박樸’하나로 인간은 온갖 꾀를 부려 제멋대로 갖가지 ‘기물器物’을 만들어 쓴다. 그렇게 인간이 만든 ‘기器’는 한가지로 그 쓰임새가 딱 정해져 변화하지 못한다. 기는 쓰임새가 바뀔 가능성이 없어져 더는 변화하는 물건이 되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자연이라는 ‘박樸’은 쓰임새가 따로 없어 쉼 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변화하면 그것은 산 것이고 변화가 그치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나뭇등걸樸이 사람의 손에 쪼개져 의자가 되면 그 의자는 의자로만 쓰이지 달리는 못 쓰게 돼 더는 변화하지 못한다. 한 가지로밖에 못 쓰는 ‘기器’란 죽은 것이고 ‘박樸’은 변화해가니 산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나뭇등걸 ‘박樸’이란 삼라만상森羅萬象을 한 마디로 비유해둔 말씀이다.
그러니 ‘박산즉위기樸散而爲器’는 온갖 목숨들이 살아감을 말한다. 풀잎은 본래  ‘박樸’이지만 사슴이 그 풀잎을 먹이로 삼아 입질하면 그 풀잎은 사슴의 먹잇감이 된다. 이것이 사슴의 입질이 행하는 ‘박산樸散’하여 ‘위기爲器’함이다. 풀잎을 씹어 새김질함이 본디대로樸를 잘게 씹어散 풀잎을 먹이로 삼아 사슴은 살아가는 것이다. 성인도 자연의 박을 받아쓰되 자연을 어기는 재주를 부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그 박을 가지고 온갖 재주를 부리고 요리해서 달고 짜고 시게 들볶아 제멋대로 바꿔버린다. 인간의 박산이 빚어내는 위기의 짓들은 마치 시한폭한을 싣고 달리는 화차 같아 겁이 난다. 글/윤재근 . 정리/하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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