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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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뉴스
  • 승인 2019.08.2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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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천지를 낳고 천지가 만물을 낳았다
萬物得一以生(만물득일이생)

昔之得一者(석지득일자)]
天得一以淸(천득일이청)
地得一以寧(지득일이령)
神得一以靈(신득일이령)
谷得一以盈(곡득일이영)
萬物得一以生(만물득일이생)

태초에 하나를 얻은 것들이다. 하늘은 하나를 얻음으로써 맑고, 땅은 하나를 얻음으로써 안정하고, 신은 하나를 얻음으로써 영묘하고, 골짜기는 하나를 얻음으로써 가득하며, 온갖 것은 하나를 얻음으로써 생성한다. <노자 39장 참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만물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그 작디작은 것들을 어려운 말로 미물이라 한다. 미물 중에는 전자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냥 뭉뚱그려서 생물이니 무생물이니 하지만 만물을 사람이 다 알 수 없다. 사람이 알고 있다는 만물이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편이 편하다. 이제는 우주선이 날아가 태양계 밖의 것들까지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세상이지만 그 사진 속의 것들이란 인간이 이미 아는 것들이 아니다. 무수한 과학자들도 처음 보고 새로 알아보아야 하는 것들일 뿐이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도대체 무엇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이 인간으로 하여금 조물주라는 낱말을 만들어냈을 터이다. 만물을 만들어낸 맨 위의 어른은 무엇일까? 인간은 이런 질문을 아주 옛날부터 던져왔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다음 두 말씀일 것이다. 그 하나는 ‘신:God’일 터이고 다른 하나는 '도:Tao'일 터이다.

 신은  만물의 창조주이다. 태초에 신이 만물을 만들었다는 해답이 인간으로 하여금 일신교를 믿게 하였고 다신교도 믿게 해왔다. 도는 만물의 조물주이다. 노자라는 성인은 조물주로서의 도를 최초로 밝힌 분이다. 도에서 만물이 나왔다는 말씀이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의 깊이를 다하게 하고 그 폭을 넓히게 해왔다. 그 노자께서 도를 얻어 만물이 생겼다고 밝힌 말씀이 ‘만물득일이생’이다.

 득일이란 하나를 얻음이다. 만물을 생기게 하는 그 하나는 도를 말한다. 그 하나를 도기라고 부른다. 도기를 일기니 생기니 원기라고 일컫기도 한다. 만물을 생기게 하는 최초의 기운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득일이라는 말씀은 도의 힘을 얻음을 말한다. 그 힘을 얻어 만물이 생겼다는 것이다. 도가 천지를 낳고 천지가 만물을 낳았다 하여 천지를 만물의 부모라 일컫는다. 그러므로 만물은 모두 다 도가 낳은 천지의 자손이다. 사람은 온갖 다른 목숨들과는 다르다고 여기는 것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함이고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나 지렁이나 민들레나 다를 바가 없다. 이를 어려운 말로 귀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온갖 것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 하나란 곧 도이니 만물은 모두 도에서 나왔다가 그 도로 되돌아간다고 노자께서 밝혔다.

 도의 슬하에서 만물은 하나인지라 귀할 것도 없고 천할 것도 없으며 높은 것도 없고 낮은 것도 없으며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다. 병균이나 독사나 모기 따위가 없었으면 싶은 것은 오로지 사람의 바람일 뿐이지 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자연이란 결코 사람의 뜻에 따라 있는 것이 아니다. 도는 만물을 낳아주되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저마다 나름대로 나왔다가 돌아가게 할 뿐이다. 이는 만물이 모조리 득일로써 생겨났기 때문이다. 만물이 모두 한 힘으로 태어났으니 본래가 다를 수 없음이다.

 그러나 사람은 만물 중 한 종에 불과할 뿐임을 한사코 거부한다. 사람을 뺀 만물은 모두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서 사람의 뜻대로 만물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중이다. 사람 탓으로 멸종하는 종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온갖 목숨들이 함께 살아가야 할 이 지구마저 살아가기 어려운 터로 몰아기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서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인간의 만용은 어디서 비롯할까? 사람이 친지에 있는 만물은 다 하나임을 외면해서이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知者不言(지자불언이라)

知者不言(지자불언)
言者不知(언자부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아는 사람한테는 말이 없고 말하는 사람한테는 아는 것이 없다)<노자 56장 참조>

 무엇이든 다 알아낼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런 사람이 가장 위험하고 무모하다. 신이 만물을 창조한다고 하면 그 신은 무엇이 창조하느냐고 따져 말하는 사람은 신이란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임을 몰라서이다. 도가 만물을 낳는다고 하면 그 도는 무엇이 낳느냐고 따져 말하는 사람은 도란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임을 몰라서이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경지란 도가 낳아준 것만을 알아볼 수 있음이고 신이 창조해준 것만을 알아낼 수 있을 뿐이다. 도 그 자체나 신 그 자체란 인간의 지력이 미칠 수 없는 경지임을 아는 사람은 신이나 도를 알려 하지 않고 믿을 수밖에 없음을 안다.

 지도란 도를 안다는 말이다. 도라는 것은 사람이 이러고저러고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지도를 노자께서는 무위자연이라 밝혔다. 이 말씀을 줄여서 어려운 말로 사천이니 순천이라 한다. 하늘을 섬기고 하늘을 따름이 곧 무위이다. 무위란 짓함이 없음이다. 여기서 짓함이란 사람의 짓을 말한다. 도의 짓을 일러 무위라 하고 사람의 짓을 일러 인위라 한다. 그러니 무위란 사람의 짓이 없음이고 그 무위를 풀이하여 자연이라 한다.

 자연이란 그냥 그대로 그러함인지라 인간의 조작이 하나도 없음이다. 어시장에서 횟감으로 광어를 살 때 자연산이니 양식이야 묻는다. 자연산 광어는 한바다에서 천지가 길러주고 양식한 광어는 가두리에서 인간이 키워준다. 인간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병에 걸릴세라 항생제도 얻어먹고 키워지는 광어는 산 것이지만 하나의 상품에 불과한 물건이지 목숨이라 할 수 없다. 산목숨을 물건이 되게 하는 짓보다 더한 인위란 없다. 본래 산목숨이란 오로지 자연의 것일 뿐이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되 배부르면 사슴을 죽이지 않으니 사자가 살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냥꾼이 놀이삼아 사슴 사냥을 하면 곧 살생이다. 살생보다 더 자연을 어기는 짓이란 없다. 자연을 어기는 짓을 악이라 하고 그 악을 범함을 일러 죄라 한다. 물론 상생만이 자연을 어기는 짓은 아니다. 해치는 짓이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자연을 어기는 짓이다. 자연을 어기는 짓을 어려운 말로 비도라 한다. 도가 아닌 것이면 늘 선 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지자불언의 지자란 누구인가? 순도 즉 도를 따르면 언제나 신하고 비도면 악함을 아는 사람이다.

 도란 사람이 생각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도를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도의 짓마저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자불언의 지자는 무위-자연이 곧 도의 짓임을 밝히는 것마저 불언하는 것은 아니다. 무위-자연을 한마다로 상덕이라 한다. 그러니 노자가 밝힌 도덕이라는 말씀은 ‘상도성덕’을 줄인 말씀인 셈이다. 상덕이란 변함없는 덕을 말하고 이를 다른 말로 천덕이라 한다. 그러나 인덕은 변함없는 덕이 아니다.

 사람이 베푸는 덕이란 변덕스럽다. 호오를 따져 덕을 베풀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는 것이란 자연의 덕이 아니다. 상덕에는 시비도 없고 호오도 없어 이러니저러니 말하지 않아도 되고 그 베풂은 한결같다. 그래서 도란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도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가 그러함을 모르는 사람은 도를 이렇고 저렇고 밝혀 아는 척하지만 따지고 보면 도 그 자체를 말함이 아니고 도의 변죽만 울릴 뿐인지라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꼴을 면하지 못한다. 코끼리를 진실로 아는 장님은 코끼리 코나 발이나 꼬리를 만져보고 코끼리를 안다고 말해선 아니 됨을 안다. 글/윤재근. 정리/하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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