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뜻밖의 국회의원
 [노년의 고동소리] 뜻밖의 국회의원
  • 하동뉴스
  • 승인 2020.04.1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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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심은 천심이고 민중이 만들어 낸 말은 참으로 해학적이고 그 의미가 깊다.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초대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이른바 임기 2년의 제헌국회였다. 그 해 3월 17일. 한민족 역사 이래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법이 공포되니 하동군에서는 정원 9명의 하동군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곧 국회의원 선거운동이 시작돼 대망의 입후보자들 기호가 결정되었다. 모두 4명이었다. 기호 1번은 38세의 고종철(高鍾哲). 그는 하동읍장?대동청년단 지역단장을 지냈다. 인쇄업을 경영해 큰돈을 벌었다고 소문이 났다. 선거 때 돈을 넉넉하게 뿌려 ‘먹고 보자 고종철’이라는 말이 퍼졌다. 기호 2번 강달수(姜達秀). 44세, 진교면 고이리 출신, 중학교 교장 역임. 부산에 거주하며 ‘부산 15구락부’라는 사회단체에 속해 있었다. 기호 3번 이상경(李相慶). 47세, 악양면 출신으로 일본대 법과를 졸업, 하동의용소방대장?하동군수리조합 이사?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하동군지부장 역임. 하동에서 지명도가 가장 높았다. 기호 4번 황학성(黃學性). 53세, 하동읍 출신, 하동읍장 역임. 행정서사. 3?1운동 당시 하동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였다.
 
 선거권자들이 대부분 글을 몰라 홍보물에 적힌 아라비아 숫자 기호를 읽을 수가 없었으니 막대기를 그어 기호를 알렸다. 기호 1번은 막대기 하나를, 기호 2번은 막대기 두개를 그어, 운동원들은 “막대기는 몇 개 누구누구…”라고 외치며, 입후보자를 선전하고 다녔다. 5월 11일, 새벽녘에 투표 결과가 밝혀졌다. 기호 1번 고종철 후보 4950표, 기호 2번 강달수 1만 7014표, 기호 3번 이상경 1만 6502표 기호 4번 황학성 9564표. 결과는 막대기 두 개, 기호 2번 강달수 후보가 차점자 이상경 보다 512표를 더 얻어 하동군을 대표한 제헌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다. 초대 국회는 모두 전국을 지역구로 나눠 한 지역구에 하나씩을 뽑는 소선거구제로 200명을 선출했다. 만 20세 이상 남녀 누구나 선거권을 가진 보통선거였고 전국 시·군 단위로 선거구를 정했지만 인구가 많은 시·군과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는 구(區) 단위로 정하고 역시 인구가 많은 구는 갑?을로 나눠 200개 선거구를 맞췄다. 

 전국적으로 948명이 입후보 등록을 했다. 선거는 미군정청에서 관리했고 정당이 없어 당 공천 입후보자는 없었다. 다만 이승만(李承晩)이 이끄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대동청년당 등 사회단체에 속한 입후보자는 있었지만 공천자는 아니었다. 이때 제헌 국회의장을 맡게 된 이승만은 서울 동대문 을구에서, 제헌 국회부의장 신익희(申翼熙)는 경기도 광주에서, 4?19혁명 후의 내각책임제 제2공화국 국무총리였던 장면(張勉)은 서울 종로 을구에서, 국회부의장과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주도했던 조봉암(曺奉岩)은 인천 을구에서 각각 당선되었다. 제헌 국회의원 선거는 사실상 먹고살기에 목을 맨 일반 국민들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국회의원이 되려는 자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고 알려고도 하질 않는 상황에서 투표장에 나갈 생각들이 없었다. 공무원들과 경찰이 반강제로 국민들을 투표장으로 내 몰았다. 투표하지 않으면 양곡배급표를 회수함은 물론, 여러모로 불이익을 주겠다고 무지한 국민들을 협박하니, ‘이름은 알아, 성은 알아, 그러나 누군지는 몰라!’하면서 투표장에 나가 억지 표를 찍었다. 투표율이 무려 95,5%였다.
 하지만 제주도는 치안 불안 때문에 제헌 국회의원을 뽑지 못했다. 하동 제헌국회의원으로 선출된 강달수 의원을 두고 군민들 사이에는 ‘뜻밖에 강달수’라는 말이 퍼졌다. 하동지역 중심가에 전혀 지명도가 없는 생소한 무명 인사가 국회의원이 됐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지각 있는 사람들은 곧 짐작이 갔다. 그 때만해도 하동지역에는 씨족별로 헤아려 강 씨들이 가장 많이 살았다. 강 씨들이 똘똘 뭉쳐‘막대기 두 개 강달수’후보를 밀었던 것이다. 아직도 지방 선거에는 ‘씨족 개념’이 ‘인물’보다 앞서는 느낌이지만, 국가 운명을 짊어진 정치 지도자는 ‘인물됨’이 앞서야하지 않을까. 사)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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