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판사가 굶어 죽다.
[노년의 고동소리] 판사가 굶어 죽다.
  • 하동뉴스
  • 승인 2020.06.2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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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패전국 일본 동경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방 법원 판사가 굶어죽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일본 열도가 큰 충격에 빠져 눈물바다를 이뤘다. 1947년 8월 27일 오후, 일본 동경 지방법원 경제사건 담당 실무 판사 야마구찌 요시타다(山口良忠)가, 더운 날씨에 일과를 끝내고 퇴근 길 법원 청사에서 나오다가 현관 계단에서 갑자기 쓰러져 딩굴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 검진한 결과 ‘극심한 영양실조’가 결정적 원인이라 했다. 평소 먹는 게 시원찮았는지 몸이 지극히 허약하여 회복 불능 상태라는 의사의 진단 결과였다. 의사는 지금부터라도 각별한 식이 요법이 필요하니, 먹는 것을 주의 깊게 챙겨 섭치 하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쓰러져 누운 야마구찌 판사는 “경제담당 판사가 법을 어기고 암시장에서 쌀을 구해다가 밥을 지어 입에 댈 수는 없다!”

 식량이 모자라 배급 받은 쌀로만 온 가족이 버티고 사는데, 법을 어겨 가며 몰래 쌀을 암시장에서 구해 먹는 것은 경제범을 다루는 경제담당 판사 입장에서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의사의 권고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야마구찌 판사는 자신의 집무실 앞에서 쓰러진지 45일 만인 10월 11일, 병석에서 숨을 모우고 말았다. 아까운 나이 33세.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판사가 굶어 죽었다!’며, 모두 눈물을 흘렸고 청소년 학생들은 두 주먹을 불끈지기도 했다. 세계대전 패전 당사국 일본은 쌀을 비롯하여 모든 먹거리를 영양가를 따져 저울에 달아 구매를 통제해야 할 만큼 먹을 것이 모자라는 절박한 형편이었다.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세상을 돌아서 버린 야마구찌 판사는 그의 딱한 심경을 이렇게 일기에 써서 남겼다. “…식량 통제법은 국민을 굶겨 죽이는 악법이다. 그러나 법률인데 따르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악법에 따라 깨끗이 죽어간 소크라테스의 높은 준법정신에 나는 탄복한다. …나도 식량 통제법 아래 그처럼 행복하게 굶어 죽을 생각이다. 내가 심판하는 피고인들은 대부분 식량 통제법을 어긴 전과자들이다. 변호사·검사들도 암시장에서 쌀을 구해 먹고 산다. 나는 어떻게 해야 올바른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전쟁에 모든 것을 바쳤다가 패배한 일본은, 턱없이 부족한 식량 사정을 극복하기 위하여 궁리 끝에 먹거리 배급제를 실시하였다. 영양학적으로 엄밀하게 계산된 생명유지 가능량 만큼만 쌀을 배급 주어 먹게하고, 다른 부식물도 식구를 헤아려 함부로 많이 구입하지 못하게 했다. 야마구찌 판사는 가족을 먹이고 남는 쌀이 없어, 도시락을 싸지 못해 날마다 점심은 굶어야 했다. ‘야마구찌 사건’이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 귀에도 전해졌다. 맥아더는 대장성에 긴급히 ‘향후 대책을 강구하라’는 공문을 띄웠다. 두뇌 회전이 빠른 일본 언론은 야마구찌 판사 죽음을 대서특필, 일본 열도를 온통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 일본인들의 눈물 샘을 자극했다. 살아있는 동안 위대했던 사람은 죽음 뒤에는 두 배나 더 위대해진다. 자기가 불타지 않으면 남을 불태울 수 없다. 나는 2000년대 중반 봉사단체 회장 신분으로 일본 자매 클럽 창립 기념행사에 참석, 축하 인사말 가운데 ‘야마구찌 판사사건’을 거론, 일본인들의 장점을 들먹여 박수를 받았다. 많은 일본인 회원들이 ‘야마구찌 판사사건’을 어떻게 아느냐며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사)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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