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하나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하나
  • 하동뉴스
  • 승인 2020.11.1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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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권서각

사람들 나보다 돋보이는 날
무료히 내가 가진 것
손꼽아 헤어본다
몸 눕힐 방 한 칸
밥상 위에 숟가락 하나
살 가릴 옷 한 벌
등에 가방 하나
가방에 시집 한 권
주머니에 동전 하나
처마 밑에 지팡이 하나
하늘에 내 별 하나
이따금 옆구리 결리는 옛사랑의 기억 하나
하나하나 헤어보니
퍽 여럿이네

-시집 『노을의 시』(푸른사상, 2019)

【시인 소개】
권서각 / 1951년 경북 순흥 출생. 197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눈물반응』 『쥐뿔의 노래』 『노을의 시』, 산문집으로 『그르이 우에니껴』, 논문집으로 『한국 근대시의 현실대응 양상 연구』 등이 있음.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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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남들과 비교하거나 비교 당하며 삽니다. 잘사는 것도 못사는 것도 다 그 비교에서 비롯되지요. 우리를 괴롭히는 ‘빈곤’도 먹고살기조차 힘든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이지요. 사람들이 나보다 돋보이는 날은 그래서 괴롭습니다. 나는 그동안 뭐했나 싶지요.
시인은 자신이 가진 게 도대체 뭐가 있나 싶어서 살펴봅니다. 방 한 칸, 숟가락 하나, 옷 한 벌, 가방 하나, 시집 한 권, 내 별 하나, 옛사랑의 기억 하나…. 헤어보니 가장 요긴해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시인의 재산 목록들이 나열됩니다. 하나하나가 모여서 꽤 넉넉합니다. 없으면 ‘경제’가 아니라 ‘영혼’이 무너지고 말 것 같은 절박한 것들로 채워진 시인의 저 극빈(極貧)은 눈부시지요.
이 시인의 본명은 석창(石昌)인데, 필명이 서각(鼠角)입니다. ‘쥐뿔’이란 뜻이지요. “쥐뿔도 없다”할 때의 그 쥐뿔입니다. 아주 하찮고 보잘 것 없다는 뜻이지요. 대체로 필명은 자신의 문학적 지향을 암시할진대, 스스로를 이렇게까지 비하하는 이유가 뭘까요? 가장 낮은 곳에서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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