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하동군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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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뉴스
  • 승인 2020.11.2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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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7대장터, 전국의 소문이 들리고 나가는 라디오방송국 같은 곳

화개장터 =화개장은 1일과 6일 장이 섰다. 조선 초 세종 때 신숙주가 5일장을 제안한 것이 5일장이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 영조 이전부터 화개장이 섰다고 기록돼 있다. 화개장은 조선의 전국 7대장이었고, 물 수위가 낮아져 구례장이 쇠퇴한 뒤 번성했다. 조선 최대의 번화가 중 한 곳이었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고 사방팔도로 남도의 소식이 전해지고, 소식이 퍼졌던 라디오 기지국 같은 곳이었다. 
화개장은 난전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화개동을 노래함>이란 시에서, 장날 포구엔 돛단배들이 엮은 듯 총총하고, 크고 작은 장꾼들이 떼 지어 모여든다고 했다. 중국비단이 들어오고, 울릉 제주 생선이 화개로 든다고도 노래했다. 조선 중기 때 이미 화개장은 국제항이었던 거다. 보부상들이 머문 주막이 즐비했고, 조직적인 상단이 이곳을 찾아 남도의 물산을 흥정하고 전국으로 퍼뜨린 남도의 기지였다. 화개는 막걸리에 좀 취해도 되고, 좀 흥얼거려도 되고, 엿바꿔먹을 수 있는 엿장수가 있고, 육자배기를 흥얼거릴 수 있는 곳이었다. 조영남의 ‘구경한 번 와보세요. 여기는 그냥 시골 화개장터…….’란 노래가 크게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해 졌다. 전라도에서 줄배를 타고, 조그마한 경전휴게소에서 쉬고, 근처 영당마을 섬진강가에 있는 도깨비둠벙(웅덩이)에는 지나는 사람에게 슬쩍슬쩍 장난을 치는 도깨비까지 있단다.

□벚꽃 쏟아지는 혼례길에서 꽃을 손으로 받고, ‘사랑을 맹세하다’

화개벚꽃10리길 =화개천을 따라 오르는 10리 벚꽃길, 화개의 절정이고, 꽃 중의 꽃이다.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사위이면서, 화개를 노래한 저항시인 김지하가 그리도 특별히 여겼던 화개, 아아 화개다. ‘내 20대 학생일 때 우연히 만난 한 화개사람 문학청년과 사흘 낯 밤을 함께 마시고 자면서 얘기 들었던 그 꽃피는 땅……신성한 꽃밭이자 국토의 단전(丹田)!...’
2002년 화개면지 축간사에 김지하가 쓴 감동적인 글이고, 그의 시집 ‘화개’가 나오기 전에 화개면지 축간사에 먼저 실은 시다.
.....
내 몸 안에 캄캄한 허공
새파란 별 뜨듯
붉은 꽃봉오리 살풋 열리 듯
아아 화개

1948년 나온 김동리의 소설 ‘역마’에는 ‘화개 장터에서 쌍계사까지의 시오리길은 언제 걸어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벚꽃 길 조성을 1928년에 시작했으니 김동리도 자기 허벅지만큼 굵은 벚꽃나무를 봤을 것이다. 10리 벚꽃 길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길 100선 가운데 최우수상을 수상한,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아름다운 꽃길이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5km에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1929년부터 2년여에 걸쳐 주민들이 직접 심은 것이다. 신작로가 완성된 뒤 하동군의 유지들에게 자금을 갹출했고, 복숭아 200그루와 벚꽃나무 1200주를 가로수로 심어 지금의 꽃을 피웠다. 당시 벚꽃나무는 1주당 10전으로 일본에서 들여왔다. 10전은 정식 한 끼의 값이었단다. 벚꽃나무 값이 모자랐든지 주민들도 일부를 부담해야 했다. 당시, 이소영 군수가 신작로를 추진했고, 김진호 면장이 주민들을 2년간 설득하고 독려했다.산을 헐고 골짜기를 메우는 노역으로 만든 길이다.
이곳 10리 벚꽃 길은 ‘혼례길’이라고도 불린다.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이 길을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지고, 영원하다고 한다. 이 길을 따라 수 년 전 하동군이 만든 산책로에는 영원한 사랑을 바라며 두 손을 꼭 잡고 어린 아이처럼 걸어가는 청춘남녀들이 수두룩하다. 이와 함께 날리는 꽃잎을 손으로 받으면 큰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화개 입구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10리 벚꽃 길이 지금은 용강계곡까지 이어져 왕복 40리 가 됐다. 봄에는 ‘한봄의 꽃잎 함박눈’, 여름엔 싯푸른 싱싱함, 가을엔 단풍과 잎 떨어짐, 겨울엔 앙상한 가지로 사계절 내내 화개의 녹차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벚꽃 따라 녹차가 있고, 녹차 옆에 화개엔 벚꽃이 있다. 녹차 밭은 계곡 바위 사이, 다랭이 논, 산꼭대기와 언덕, 집과 길가를 모조리 채우며 명풍경을 보여준다.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명품, 장관이다. 벚꽃+녹차 밭은 산 들, 강, 집, 사람과 식물의 경계를 헐어버렸다.

□벚꽃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데, 팔만대장경도 벚꽃나무로 만들어

벚꽃의 원산지는 제주도와 울릉도 =벚꽃은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자라지만 원산지는 놀랍게도 우리나라 제주도와 울릉도다. 제주도에 자생지가 있고, 충남 금산군 산안리에도 무더기 벚꽃 자생지가 있다. 일본에서 자생하는 벚나무 자생지는 한 곳도 없다고 한다. 벚나무는 한약재로 많이 쓰였고, 기록도 셀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벚나무는 20여 종에 이른다. 대부분 아름다운 꽃에 여름에 열매까지 먹을 수 있는 귀한 나무다.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벚나무’를 비롯하여 한라산의 탐라벚나무, 관음벚나무, 왕벚나무, 섬개벚나무, 서울귀룽나무 등 6~7종이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특산종이다. 차나무가 인도와 중국이 원산지라면, 벚나무는 울릉도와 제주도다. 화개의 벚나무는 팔만대장경을 만들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高麗八萬大藏經) 경판은 우리나라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를 깎아 만든 세계의 유산이다. 이 팔만대장경은 고려 때 지리산에서 벌목한 벚나무와 돌배나무를 화개천과 섬진강을 따라 남해로 옮긴 뒤 판각을 하고 합천해인사로 옮겼음은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자나 깨나 청나라를 친다며 “북벌, 북벌”을 외친 조선 효종은 활(국궁)을 만들기 위해 화개 벚꽃과 같은 왕벚꽃나무를 서울 우이동과 장충동에 대량으로 심기도 했다. 재질이 치밀하고 결이 곱고 잘 썩지 않아 조각재료, 칠기, 가구, 공예재료, 목판 인쇄용 목재로도 많이 쓰인다. 1493년 왕명에 따라 쓰인 <악학궤범>에 악기를 벚나무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하지만 화개벚나무는 ‘사쿠라 정신’이니, 일본의 ‘국화’라며 왜색 시비가 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탈 왜색을 한다며 민족주의 입장에서 벚나무가 원래 우리 나무란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 왜색 시비, 원래 우리 것이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음이다.

□화개장터 벚꽃축제는 1993년 처음 개최한 하동군의 대표 꽃놀이축제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화개10리벚꽃길이 벚꽃잎 쏟아지는 길일인 4월 초에 섬진강 둔치 일원에서 3일 동안 펼쳐진다. 친선궁도대회, 길놀이 및 부보상 퍼레이드, 벚꽃제례, 연예인 축하쇼, 전국씨름대회, 벚꽃장사 선발전, 화개장터 마당극, 벚꽃가수 선발전, 심야 영화상영, 민속윷놀이대회, 내 고향 OX퀴즈 및 장기자랑, 청소년 댄싱경연대회 등이 열린다. 이때는 떨어지는 벚꽃잎 만큼 사람이 모이고, 벚꽃 구경만치나 사람 구경도 압권이다.

□삼신리에 왜 기러기가 오는지 기러기에게 물어봐!

어안동 회홍돌이 =설화에 1만8000개의 사찰이 있었다는 화개, 화개초등학교가 있는 법하마을은 1600년도 초에 쓰인 <진양지>에 기록된 마을이다. 법하마을과 함께 삼신리는 화개의 중심마을이었다. 법하는 ‘부처님의 법 아래’란 뜻으로 사하촌을 일컫는다. 이 동네 주위로 아름다운 마을 이름들이 있다. ‘어안동(於雁同)’이라고 불리는 ‘늘안목’, ‘회홍돌이’라고 불리는 ‘늘암멕이’도 있다. 시베리아 동부나 사할린섬, 알래스카 등지에 번식한 기러기들이 섬진강 하구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다시 북쪽으로 가면서 반드시 이곳, 어안동과 회홍돌이에 머물렀다가 간다. 
동물도 와서는 이곳에 머무는데 놀러온 사람들이 왜 화개에 머무는 것을 망설이나. 어안이란 한자를 풀면, ‘기러기가 산다’는 뜻이고, 회홍(回鴻)돌이는 돌아온 기러기가 다시 날아간다는 뜻이다. 
지금 어안동은 뭇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다. 기러기 아빠가 없고, 철새정치인이 없고, 주민들이 없고 공부하는 스님들만 살고 있다. 그리고 기러기가 산다. 누군가 이곳 사람에게 “왜 기러기들이 어안, 회홍돌이로 오냐”고 물었단다. 그 화개사람이 하는 말. “기러기들한테 아직 안물어봤습니돠” “물어봐도 말을 안 해 줄겁니돠!!” 이런 어안이 벙벙한 말을 했단다. 이 삼신리는 범왕리 신흥부락의 ‘삼신동’과는 전혀 다른 마을이다. 글/하동군, 국제대학교 정리/하동뉴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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