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조병갑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노년의 고동소리] 조병갑의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 하동뉴스
  • 승인 2020.12.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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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어렸을 때는 ‘동학 농민혁명’을 ‘동학란’이라 했다. 일제 잔재 때문이었다. 우리 마을에 살았던 내 왕고모부가 조씨(曺氏)였는데, 동학교도가 되어 집을 나간 채 간곳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의 아들들은 흩어졌고, 장남은 외가인 우리 집안에 기대어 그야말로 어렵게 살았다. 손자들은 남의 집 고용살이로 입에 풀칠을 했다. 우리 하동에서도 동학군에 가담, 목숨을 잃은 군민들이 부지기 수였다. ‘동학 농민혁명’은 나라를 파국으로 몰았다. 나라가 민심을 추스를 힘이 없어 청나라와 일본 군대가 들어와 날뛰니 나라는 이미 꼴을 잃었던 것이다.
 
 ‘동학 농민혁명’ 원인 제공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썩어 문드러진 탐관 오리 고부 군수 조병갑(曺秉甲)이다. 조병갑의 본관은 양주(楊州), 아비는 태인 군수를 지낸 조규순(趙奎淳),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趙斗淳)이 숙부였고, 조병갑의 형 조병섭(趙秉燮)이 조두순의 양자가 되었다. 어미는 기생 출신으로 이름이 알려지질 않았다. 따라서 조병갑은 아비 조규순이 기생을 집적거려 얻은 옆길 자식이었다. 대원군을 도와 고종 즉위에 힘을 보탠 영의정 조두순의 날개 밑에서 조병갑은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그는 48세 때 재물 긁어 담기가 좋다는 전라도 고부 군수가 됐다. 그는 자리에 앉기가 바쁘게 농민들을 강제 동원, 동진강 만석보 밑에 필요 없는 억지 보를 만들어 수세(水稅)로 벼 700석을 챙겼다. 

 첫 해는 수세를 안 받겠다고 속이고는 사기를 친 것이었다. 아비 조규순의 송덕비 건립 경비조로 1천 냥을 받아 삼켰다. 조금 넉넉해 보이는 부민들을 갖가지 죄목으로 잡아 가둬 보석금을 엄청나게 받아먹고 풀어 줬다. 부모에게 불효했다는 ‘불효죄’, 남의 여자를 넘봤다는‘음행죄’, 도박을 했다는 ‘도박죄’, 형제간에 화목하지 않다는 ‘불화죄’, 어른에게 불손했다는 ‘불경죄’, 참으로 마당에 개가 앞발을 치켜들고 웃을 얼토당토 않는 죄목으로 주민들 주머니를 털었다. 조병갑의 눈에는 주민들이 걸어 다니는 돈주머니로 보였다. 기생 출신 조병갑의 어미가 죽었다. 조병갑은 어미 상을 치르느라 고부 군수 직을 그만 뒀다. 그 때 조병갑에게 빌붙어 호사를 누리던 말 깨나 짓거리던 고부군 유지들이 부조금을 모았다. 2000냥이었다. 유지들은 부조금을 고부 향교 김성천 장의와 전직 장의 전창혁(全彰爀)에게 맡겼다. 전직 장의 전창혁은 곧 전봉준의 아버지였다. 

 그런데 현직 향교 장의 김성천은 마음이 달랐다. 그는 조병갑이 다시 고부 군수로 복직할 줄을 몰랐다. 김성천은 “추호도 선정을 베푼 적이 없고 기생 어미의 죽음에 무슨 놈의 부의냐!”하고 큰소리 치고는 맡은 부조금을 마음대로 처분해 버렸다. 그런 뒤 김성천은 곧 저승 식구가 돼 버렸다. 어미 거상을 마친 조병갑은 물이 좋은 고부군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거액의 뇌물을 바쳐 다시 고부 군수로 복직했다. 그는 어미 죽음 부조금부터 챙겼다. 그러나 장본인 김성천은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무덤을 파서 해골을 앉혀 놓고 ‘부조금을 내놔라’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살아 있는 전창혁이 조병갑에게 끌려갔다. 전창혁은 나졸들이 휘두르는 곤장을 맞고 조병갑 발밑에서 뻗어 버렸다. 아들 전봉준이 아버지 전창혁을 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전창혁은 한 많은 세상을 돌아섰다. 나이 66세, 동네 아이들 훈장 노릇을 하던 전봉준은 기가 막혔다. 그는 조병갑을 아버지 원수로 못 박았다. 반드시 조병갑을 죽여 두개골로 술잔을 만들어 아버지 영전에 술을 한잔 따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전봉준은 본관이 천안(天安), 자는 명좌(明佐), 호가 해몽(海夢), 어머니는 광산 김 씨였다. 오늘날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당촌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유력하다. 조병갑은 민란 책임을 지고 귀양 보내져 죽었고, 전봉준은 일본군 토벌대 힘에 눌려 목숨을 잃었다. 원수 조병갑의 두개골은 만져 보지도 못한 채, 탐욕 덩어리 조병갑이라는 한 인간의「어긋난 생각」이 곧 나라를 거덜 낸 ‘불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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