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맞짱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맞짱
  • 하동뉴스
  • 승인 2021.01.1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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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짱

                                손수진

저 작은 게가 집게발을 치켜들고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일까요?

비굴하지 않습니다.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숨지도 않습니다.

당당합니다.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거지요.

한판 붙어 보자는 거지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목숨 거는 거라는데…

무섭습니다.

-시집 『너는 꽃으로 피어라 나는 잎으로 피리니』(시와사람, 2020)

【시인 소개】
손수진 / 2005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으로 『붉은여우』 『방울뱀이 운다』 『너는 꽃으로 피어라 나는 잎으로 피리니』 등이 있음. 무안문인협회 회장 역임. 전남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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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작은 게 한 마리가 집게발을 치켜들고 세상을 향해 도발하고 있습니다. 비굴하지 않고 무모하도록 당당합니다. 하찮은 미물을 저토록 의연하게 만드는 건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이든, 가족이든, 자존심이든 반드시 지켜야 할 게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넘어서면 무서운 게 없지요. 저 게처럼 말이지요.
살다보면 무수히 좌절하게 되지요. 어쩌면 우리의 생이란 온통 좌절로 점철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수한 좌절을 반복하다보면 의지마저 약해지고, 투지마저 꺾여서 세상과 맞짱 떠볼 엄두도 못 내게 되지요. “그래, 덤빌 테면 덤벼 봐라!” 소리 지르며 두 눈을 부릅뜨고 까짓거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고, 죽고살기로 한번 해보자고 달려들면 겁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 있는 모습을 우리는 ‘성공’이라고 부르고,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 넘어져 있는 모습을 ‘실패’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모든 성공은 실패의 다음 모습이고, 실패는 성공의 이전 모습이겠지요. 물론 절망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포기하지 않을 때 기회는 올 것입니다. 새해에는 용기를 넘어 저런 무모한 오기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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