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60년 전 신축년에는 어떤 일이…?
[노년의 고동소리] 60년 전 신축년에는 어떤 일이…?
  • 하동뉴스
  • 승인 2021.01.26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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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광복이후 두 번째 맞는 소띠 해 신축년이다. 1961년 신축년에 나는 평생 잊혀 지지 않는 얄궂은 경험을 했다. 민주당 정권 시절이었다. 집안 형님 되는 분이 면장에게 부탁, 나를 면서기로 채용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 때 면장이 형님과 이종사촌간이라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면장 아름 아름으로 사람을 골라 면서기로 임용하던 때였다. 직접선거로 면장을 뽑았었기에 면장을 하고 싶은 입후보자가 유력 가문을 찾아 아무개를 면서기 시켜 줄테니 표를 몰아 달라하여 당선되기도 했다. 나는 필요한 서류를 준비, 이장 편으로 보내라는 면장의 전갈을 받고 부랴부랴 서류를 갖췄다. 

 5월 16일 이른 아침 이장을 찾아 갔다. 이미 내 사정을 알고 있던 이장은 매우 안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고 이 사람아 다 틀렸네! 엊저녁에 서울에 혁명인가 뭔가 일어나 면장도 바뀌게 됐네!” 나는 순간적으로 홀가분해졌다. 내 나이 겨우 열여덟이라 솔직히 면서기를 할 자신도 없었고 곧 군대에 가야했기에 ‘잘됐다’싶어 가볍게 마음을 접었다. 이른바 ‘5?16 혁명’이 알려졌다. 세상이 확 바뀌는 것 같았다. 죽기 살기로 날뛰어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허망하게 보따리를 쌌다. 각부 장관?도지사는 별자리들이, 시장?군수는 영관급 장교들 차지였다. 면장들도 모두 바뀌어 하동에는 26세의 육군 중위 출신이 면장 의자에 버티고 앉아 나이든 면서기들의 입이 벌어지게 하기도 했다. 그 해는 연초부터 나라가 흔들거렸다. 

 절대 다수로 정권을 차지한 민주당은 곧 분열되어 국정을 이끌어 갈 힘을 잃었다. 1월에 장건상(張建相) 등이 혁신당을 만들었고, 윤길중(尹吉重) 등은 통일사회당을 발족 했다. 2월에는 민주당에서 갈라선 신민당이 결성됐다. 3월에 혁신계가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반공법 제정 반대’시위를 벌여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법을 만들지 말라며 악을 썼다. 5월 초에는 대학생들이 민족통일 전국학생연맹준비위원회를 결성, 남북학생회담을 열자하니, 북한 학생들이 곧 서울로 떼거지로 몰려 올 것 같기도 했다. 혁명 전날에는 민족 통일당이 발기인 대회를 열어 ‘남북통일을 완수하겠다’며 덤볐다. 세상이 불그스레해지고 정계가 뒤죽박죽 됐다.

 혁명 당일 군사 혁명위원회가 구성 되었다. 의장은 육군 중장 장도영, 부의장은 육군 소장 박정희였다. 곧 혁명공약 6개항이 발표 됐다. 제1항이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였다. 용공 세력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 각료 체포령을 내렸다. 장면 국무총리는 몸을 숨겼다. 혁명 주역들이 대통령 윤보선을 찾아갔더니, 윤보선의 첫말이 ‘올 것이 왔구나!’였다. 이 말은 오랫동안 정계의 시비꺼리가 됐다. 대통령 윤보선과 총리 장면은 정파가 달라 눈을 마주쳐 말을 섞지 않았다. 5월 19일,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했다. 7월 2일, 최고회의 의장에 박정희, 내각 수반에 송요찬이 취임하고 이튿날 ‘반공법’을 공포, 용공 세력들의 눈깔을 뽑아 버렸다.
  
 그 해 북한은 뭘 했을까, 북한 김일성은 6월 29일 소련 수상 후르시쵸프를 찾아가 북한?소련 ‘우호 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고, 연이어 중국에 매달려 똑 같은 조약을 맺어 집권 기반을 다졌다. 김일성은 8월 말 경북 상주 출신 북한 무역성 차관 황태성(黃太成)을 한국의 실력자 박정희에게 밀파했다. 김일성은 황태성에게 ‘과거 남로 당원이던 박정희가 정권을 잡았다니 만나 통일문제를 협의해 보라.’했던 것이다. 황태성은 서울에 나타나 절친했던 친구 박상희의 부인을 통해 김종필과 접선했다. 박상희는 김종필의 장인이며 박정희의 바로 위 형 이었다. 박정희와 사상적 교감을 나누기도 했던 황태성은, 10월 경찰에 붙잡혔다가 12월 20일 혁명군사재판에서 간첩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사형수 황태성을 미국 정보기관에서 데리고 가서 정보 수집 도구로 삼았다. 1963년 12월 14일 서울 교도소에서 황태성 총살형이 집행 됐다. 김일성은 ‘밀사를 왜 죽였느냐?’며 격분, 박정희를 죽이고야 말겠다며 특공대를 육성, 1968년 김신조 일당을 내려 보냈지만 실패하였다. 60년 전 신축년에 한반도에는 큰 바람이 불었었다. (사)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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