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3·1 운동’과 카이로 선언 ‘특별조항’
[노년의 고동소리] ‘3·1 운동’과 카이로 선언 ‘특별조항’
  • 하동뉴스
  • 승인 2021.03.0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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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3년 11월 22일부터 26일까지 닷새 동안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세계의 판도를 요리하는 모임이 열렸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이태리가 곧 죽을 듯 숨을 헐떡거렸고,「천황폐하 만세」를 떠벌리며 미쳐 날뛰던 일본도 곧 도깨비불처럼 사그러지고 말 것이라는 판단에서, 연합국 수뇌 셋이 전후 처리 문제를 두고 회담을 가진 것이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 중국 장제스(蔣介石) 총통, 나는 여러 문헌에서 사진으로 이들의 모습을 봐 왔는데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다. 맨 왼쪽 장제스로부터 루즈벨트, 처칠 순으로 앉아 모두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고, 오른쪽 맨 끝에 앉아 처칠 수상을 향해 정겨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듯한 동양인 여성이 도대체 누구인가 싶었다. 

 몇 년 전 대만 장제스 기념관에서 나는 안내원에게 사진 속의 여성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안내원은 장제스 총통의 부인 쑹메이린(宋美齡)이라 했다. 영어에 서툰 장제스의 통역으로 쑹메이린이 함께했다는 것이었다. 쑹메이린은 중국 공화제 창시자 쑨원(孫文)의 처제로 미국에 유학, 국제 감각을 익힌 여걸이었다. 카이로 회담 결과「카이로 선언문」이 작성 되었다. 선언문은 4개 조항이었다. 일본이 항복할 때까지 계속 싸울 것과 일본의 침략을 저지, 응징하지만 3국은 영토 확장 의도는 없으며, 1차 세계 대전이후 일본이 탈취한 태평양 제도를 모두 박탈하고, 만주와 대만 주변의 제도(諸島)를 중국에 반환, 중국에서 일본 세력을 완전히 축출한다는 것이었다. 딱하게도 한국은 한마디도 언급이 없었다. 상해 임시정부 김구(金九) 주석의 간곡한 부탁을 받은 장제스 총통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장제스가「이번 기회에 한국을 독립시키자」했다. 루즈벨트와 처칠이 함께「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었다.「한국은 1차 대전 훨씬 전에 이미 없어진 나란데 본 회담의 논제가 될 수 없다」며 어림없는 제의라는 주장이었다. 거기다가 처칠은 덧붙였다. “편협한 문벌주의와 사대사상이 몸에 배인 한국인들의 의식 수준으로는 독립된 민주주의 나라를 세울 수 없다!” 루즈벨트는 한 술 더 떴다. “태평양 전쟁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죽거나 포로로 잡힌 일본군 가운데는 한국인이 많더라!” 대부분의 한국인은 일본 천황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 같더라는 루즈벨트의 견해에는, 한국인들은 이미 일본 천황의 신민이 돼 버렸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다. 한국 독립 문제에 찬물을 들어붙는 두 인물의 반응은 매우 냉갈스러웠다. 하지만 장제스 총통은 물러서지 않았다. 1919년 한반도에서 벌어진「3·1 독립 만세 운동」을 들먹여 한국인들의 끈질긴 항일 독립운동을 토론의 중심에 세웠다. 뿐만 아니라 3·1운동의 파장이 인도의 비폭력 저항 운동과 중국의 5·4운동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 곳에서 벌어진 3·1만세 운동 여파로 중국 대륙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광복군들의 활약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열을 올렸다. 이때 송메이린의 능란한 영어 실력이 큰 역할을 했다. 마침내 두 인물은 마음을 바꿨다. 

 루즈벨트가 먼저「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독립시키자」했더니, 자국의 식민지 문제로 골치를 앓던 처칠은 매우 불만스럽다는 듯「절차를 거처서!」라고 토를 달았다. 이리하여 카이로 선언 4개 본 조항 끝 머리에 한국 문제를 담은 특별조항이 만들어졌다.「현재 한국인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음을 유의, 앞으로 한국을 자유 독립 국가로 할 결의를 다진다.」 카이로 선언은 한국의 독립 문제가 처음으로 국제 협약에 명시된 역사적인 선언이었다. 바야흐로 국제적 보장을 받게 된「카이로 선언」은, 1945년 7월에 발표된 일본을 향한「대일 항복 요구」선언인「포츠담 선언」으로 이어져 마침내 한반도에서 일제는 씻겨 나갔다.「3·1 독립 만세 운동」은 비록 국내에서는 실패한 운동이었다고 허탈해 하였지만, 30여년 뒤 이처럼 국제무대에서 그 얼이 더욱 빛났던 것이다.  ㈔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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