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대통령 생일에 태극기를 달아라!
 [노년의 고동소리] 대통령 생일에 태극기를 달아라!
  • 하동뉴스
  • 승인 2021.03.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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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3월 26일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80회 생일. 그 며칠 전 이기붕(李起鵬) 국회의장 공관 거실에 이기붕과 부인 박마리아가 마주 했다. 박마리아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인 듯 말을 꺼냈다. “이 달 26일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이기붕 국회의장이 뜬 금 없다는 듯 받았다. “26일? 3월 26일이라…” 이기붕의 반응에 박마리아가 답답해서 미치겠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아이 참, 각하의 팔순 생신이에요!” “아하! 그렇구먼, 각하의 80회 생신이지, 내 정신 좀 봐!” 박마리아는 혀를 가다듬어 질문인지 질책인지 분간이 안 되게 물었다. “각하께서 8순이 되신 거에요! 자유당에서는 그래 여태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있었나요?” 국회의장 이기붕은 매우 송구하게 되었다는 듯 대꾸 했다. “뭔가 하고 있을 거야, 설마 그냥 있을라구!” 박마리아는 참으로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아니, 당신도 모르게 준비를 한단 말인가요?”

 박마리아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나 죄 없는 전화기 손잡이를 야무지게 돌려 댔다. 막료 하나가 쏜살같이 달려 왔다. 초봄 날씬데 이마엔 땀이 배었다. 박마리아는 막료에게 대통령 각하 8순 생신에 대하여 아는바가 없느냐고 물었다. 막료는 대답했다. “알아 봤더니 그거 서울시에서 선수를 쳤더구만요.” “뭣이, 서울시에서?” “예, 각하의 80회 탄신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서울시 주최로 준비중에 있답니다!” 이기붕은 한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드러운 눈빛으로 막료를 바라보고 말했다. “그럼 우리 자유당으로서는 그냥 구경만 하고 있나?” “제 생각으로는 거기 맡기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각하 탄신 기념일은 국경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이 행사를 거행 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적극 후원만 하지요 뭐!”

 막료의 말에 이기붕은 잘되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서울특별시장과 관계 장관을 급히 불렀다. 그 때 서울 시장은 김태선(金泰善)이었다. 이기붕은 온화한 미소를 띠우고 김태선 시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시에서 각하의 탄신 기념일 행사를 준비 한다 구요?” “네, 그렇잖아도 진즉 의논 드릴려구 했습니다만…” 이 때 가만히 입 다물고 있던 장경근(張暻根) 내무부 장관이 불쑥 끼어들어 한 몫 하려 했다. 이기붕을 앞질러 아주 관심이 큰 중요 과업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시장에게 질문을 했다. “지금 시장은 어떤 행사를 준비하고 계십니까?” “네, 각하의 만수무강을 비는 뜻에서 경노회도 열고, 아울러 효자 효녀와 열부(烈婦)를 뽑아 표창할 예정이며…” 중간에 이기붕이 말을 잘랐다.
 
 “으음, 아주 동양적이로구먼! 각하께서 대단히 좋아하시겠습니다! 그리고 또 없습니까?” “네, 음악회도 열고 그날 꽃전차를 운행케 할 작정이며 남산에서 축하 폭죽도 터뜨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 막료가 아주 중요한게 빠졌다며 기발한 제안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빠진 게 있습니다. 그 날은 국경일이니까 집집마다 국기를 게양하게 해야지요?” 김태선 시장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머리를 수그렸다. 3월 26일, 서울 운동장에서 ‘이승만 대통령 제80회 탄신 경축식장’이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걸리고 대통령 팔순 잔치가 푸짐하게 펼쳐졌다.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집집마다 태극기가 게양된 것이었다. 소식을 접한 야당 정치인 조병옥(趙炳玉) 박사는 탄식 했다. “망령이 났구먼! 히틀러나 뭇솔리니도 생일에 이따위 짓은 안했어!” 군자형 대통령이 있고 소인형 대통령이 있다. 소인형 대통령은 아첨을 떨면 기뻐하기 때문에 다루기가 매우 쉽다. ㈔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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