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하늘동에 전입신고 하러 가다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하늘동에 전입신고 하러 가다
  • 하동뉴스
  • 승인 2021.04.1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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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동에 전입신고 하러 가다

                                                      서상만

아내가 떠나고 보름째 되는 날
월계동사무소에 사망신고를 하러갔다
아내의 주민등록증을 내미니
담당직원이 전산망에 띄운
사망신고서에 서명을 요청했다
“네, 다 끝났습니다”
꽝!
천공기로 아내의 얼굴에 구멍을 냈다
순간
내 가슴도 뻥 뚫렸다
아내는 두 번 죽었다
아내의 이름 옆에
(사망)이란 글자가 붙었다

세상에! 내 아내는
텅 빈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 《계간문예》(2021년 봄호)

【시인 소개】
서상만 / 1941년 경북 호미곶 출생. 1982년 월간 《한국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월계동 풀』 외 다수. 시선집으로 『푸념의 詩』와 동시집으로 『너, 정말 까불래?』 외 다수가 있음. 월간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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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장면이 있습니다. 너무 참담하거나 끔찍해서 차마 마주할 엄두를 못 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건 현장을 살펴보는 강력계 형사처럼 두 눈 똑바로 뜨고 그 끔찍하고 참담한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응시하며 가슴에 새겨두는 사람이 있지요. 바로 시인입니다. 여리고 섬세해서 맨 먼저 눈감고 외면할 것 같은 시인이 마지막까지 그 참담함을 견디고 끔찍함을 가슴에 새기지요. 왜 그럴까요? 그곳에는 피해갈 수 없는 삶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고, 시인은 진실을 통해 어떤 아름다움에 이르고자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동사무소에 죽은 아내의 사망신고를 하러 간 남편이 겪는 그 참담함을 아무런 수식 없이 건조하게, 마치 보고서 쓰듯이 묘사한 이 시는 그 무표정에서 꾹꾹 누르고 있는 슬픔이 비칩니다. 아마도 아내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시인은 죽은 아내의 얼굴에 구멍이 뚫린 채 이름 옆에 ‘사망’이라고 찍힌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실감하고 오열하였겠지요. 시적 감동은 세련된 미사여구가 아니라 이런 끔찍한 진실과 마주할 때에 비롯됩니다. 그래서 종종 좋은 시는 속으로는 뜨겁지만 겉으로는 서늘하게 보일 때가 많지요.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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