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김성주’가 ‘김일성’이 된 진실
[노년의 고동소리] ‘김성주’가 ‘김일성’이 된 진실
  • 하동뉴스
  • 승인 2021.05.11 07: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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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다닐 때 같은 반에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급우가 있었다. 그 학생은 인근 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덩치가 상당한 친구였다. 그 때만해도 6·25 전란이 막 끝난 1950년대 중반이라 북한 공산주의를 원수처럼 여기는 풍조가 만연한 시대였다. ‘멸공(滅共) 통일’· ‘쳐부수자 공산당’· ‘때려잡자 김일성’이란 구호가 국민들 사이에 만연했고 학생들은 그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 반 김일성 학생은 자연스럽게 놀림감이 됐다. 학우들은 장난삼아 김일성에게 떼로 달려들어 “때려잡자 김일성”을 외치며 귀찮게 굴었다. 김일성 학생의 아버지는 도리 없이 아들의 이름을 바꿨다. 법원에서 재판까지 받았다. 판사도 이해가 간다며 쉽게 인정해 주더라고 했다. 근래에 나는 ‘내가 만난 김성주-김일성’이라는 책을 구해 읽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했었다. 

 미국에서 병리학 전문의로 평생을 활동했던 손원태(孫元泰)라는 재미 교포가 쓴 책이었다. 손 씨는 한국의 초대 해군참모총장을 거쳐 국방부 장관을 지낸 손원일(孫元一)의 아우였다. 손원태는 김일성과 의형제 사이였다. 어릴 때 손원태의 아버지 손정도(孫貞道)목사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자랐던 김일성과 손원태는 광복과 6·25 전쟁 와중에 헤어졌다. 그런 뒤 60여년 만에 극적으로 만났었다. 김일성은 손원태를 만나 너무 반가운 나머지 해마다 손원태를 평양으로 불러 생일잔치를 거창하게 차려 대접했다. 손원태가 팔순이 되었을 때 김일성은 “아우 8갑 잔치는 내가 평양에서 준비하겠다”고 굳게 약속하고는 1994년 그해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해 버렸다. 김일성의 후임 김정일(金正日)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손원태의 8갑 잔치를 평양에서 융숭하게 베풀었다.

 2004년 9월 손원태가 90세 나이로 사망했다. 김정일은 손원태의 유해를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장했다. 그런 손원태는 회고록에서 김일성과 자기 아버지 손정도 목사와의 관계, 소년 김일성의 모습, 김일성과 손원태의 극적인 만남 등을 자세하게 밝혀 기록했다. 이 책은 1996년 영문으로 미국에서 발간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반북 정서로 인해 한글판 출판은 하지 못했다. 2020년 3월 도서출판 동연에서 비로소 한글판으로 간행하였는데, 손원태가 미국에서 출판한 회고록 내용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김일성을 보는 시각이 우리 정서에 약간 어긋남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황해도 곡산 출신 파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蔡命新) 장군은 ‘광복 직후 함께 일하자며 찾아 왔던 김성주가 김일성으로 이름을 바꿨더라’했고, 평양에서 자란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 교수도 평양에서 김일성 장군 환영대회를 한다기에 나가 봤더니 ‘김성주가 김일성이더라’고 언론에 글을 남겼다. 우리는 한 때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맹렬히 전개하며 일본군을 무찔렀던 김일성이라는 무장 독립운동 장군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광복과 함께 어느날 갑자기 김성주가 쏘련에서 갓 들어와 자기가 바로 김일성이라 했다. 그러니 현재의 김일성은 가짜고 ‘진짜 김일성’은 따로 있었다는 말이 파다했었다. 그리하여 진짜 김일성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데, 손원태의 회고록을 통해 비로소 진실을 알 수가 있었다.
 
 김성주가 약관의 소년 장군으로 두각을 나타내자 동료들이 앞으로 지도자로 전망되는 김성주의 아호를 지어 주었다. 아호가 ‘일성(一星)’이었다. 그런데 당사자 김성주가 어떤 이유에선지 아호를 ‘일성(日成)’」으로 글자를 고쳐 부르게 했다. 1937년 6월, 19세 소년 혁명가 김성주가 한국·중국 의용군 연합부대를 통솔, 함경도 갑산 보천보에서 왜군경을 기습 공격, 큰 전과를 거두니, 미국의 교포 신문 ‘신한민보’와 한국의 ‘동아일보’, 중국 언론매체에서 ‘김일성 무장 부대’가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고 보도하였다. 심지어 미국 교포신문 ‘신한민보’는 ‘한중연합 의용군 제3사장 김일성장군, 용같이 날고 범같이 비략(飛略) 활동’이라는 타이틀 밑에 김일성의 활동상을 보도했었다. 김성주가 김일성이 된 까닭이 문헌으로 기록됐다. 곧 김성주의 아호가 김일성으로 이름이 돼 버린 것이었다. (사)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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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21-12-21 15:41:20
그리고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교수와 김일성 주석의 가족들하고 북에서 친분있던 사이도 진실이라는 명백한 사실이지~!!!!

박혜연 2021-12-21 15:39:19
김일성 주석이 김성주든 마적단출신이든 중요한건 그가 젊은시절 만주에서 험하게 살아왔던거~!!!!! 어린시절 손정도 목사님의 양아들로 들어간것도 명백한 진실이라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