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연재] 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 하동뉴스
  • 승인 2021.05.2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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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제1장: 낳아주되 갖지 않는다
제2장: 성인께는 정해 둔 마음이 없다
제3장: 경솔함은 곧장 뿌리를 잃는다
제4장: 제 태어난 바를 싫어하지 말라
제5장: 배우기를 끊으면 걱정이 없다

불선인은 선인의 밑천이다
善人者不善人之師   선인자불선인지사라

善人者不善人之師  선인자불선인지사 
不善仁者善人之資  불선인자선인지자
不貴其師          불귀기사
不愛其資          부애기자
雖智 大迷         수지 대미
是謂要妙          시위요묘

선한 사람이라는 것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고, 선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은 선한 사람의 밑천이다.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밑천을 아끼지 않는다면 비록 많이 안다 한들 크게 미혹하다. 이를 긴요한 미묘함이라 한다. <노자 27장 참조>

선한 법자연을 말한다. 자연을 본받으면 그것이 곧 선이다. 봄이 오면 초목이 싹트고 여름이면 무성해져 열매를 맺고 가을이면 맺은 열매를 영글게 하여 한해의 보람을 땅으로 돌려보내고 겨울이면 다름 봄을 기다리는 초목의 한해살이야말로 상선이다. 상도의 짓 즉 조화를 상덕이라 하고 그 상덕을 상선이라고 한다. 물론 상도의 조화를 자연이라 하니 상덕-상선-자연이란 모두 상도의 짓을 말한다. 그러니 성인은 상선으로써 생사를 누리는 분이다. 이런 성인을 진실로 본받아 살고자 하는 사람을 일러 선인이라 한다. <주역>에서도 천도를 계승함이 선이라고 한다. 천도 역시 자연이니 자연은 곧 선이다. 사람이 자연을 본받아 살면 그 삶이 곧 선이다. 그러니 선이란 사람이 만들어 정해놓은 인륜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선이란 천륜 즉 자연이다. 그 사람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하면 바로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법 없이 산다고 할 때 그 법이란 법자연의 법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육법의 법을 말한다.
자연을 본받음이란 인간이 만든 육법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법자연의 선에는 육법이라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까닭이다. 버섯을 전공하는 한 학자가 등산길에서 버섯을 담은 망태를 내려놓고 쉬는 노인을 만났다. 호기심이 도져 망태 속으로 버섯들을 구경 좀 하자고 했더니 그 노인이 땅바닥에 두 무더기를 늘어놓았다. 이것저것의 학명으로 아는 척하고 이 골짝에는 버섯들이 몇 종류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 무더기는 먹는 거고 저 무더기는 약재이구먼! 또 못 먹는 독버섯도 있으니 이 골짜기에는 세 가지 버섯이 있어요.” 이 촌로의 대답에 무척 부끄러웠었다는 게다. 버섯에 관해 박식한 학자를 무식한 촌로가 왜 부끄럽게 했을까? 무식한 덕 앞에선 유식함은 절로 부끄러워진다. 유식할수록 자연과 멀어져 지식의 노예가 되어버린 탓으로 자연 앞에 인간의 짓은 늘 부끄러워진다. 재승박덕이라 않는가! 지식이 넘치면 그만큼 덕은 엷어진다. 그러면 저절로 불선인이 되고 만다. 본래 선은 덕을 말한다. 선덕 그것은 소사하여 과욕하면 절로 찾아온다. 누구나 제몫을 적게 하여 욕심을 줄일수록 후덕해진다. 후덕한 사람 그분이 곧 선인이다. 선인은 덕이 두터운 분이고 불선인은 박덕한 자이다. 제몫을 키우면 덕은 그만큼 엷어지고 덕이 박해질수록 탐욕 즉 욕심을 지나치게 부린다. 이처럼 탐욕 탓으로 박덕한 사람을 일러 불선인이라 한다. 불선인은 악한을 뜻함이 아니라 박덕한 인간을 말한다. 문명은 탐욕을 불러 사람을 불선인이 되게 하고 자연은 과욕을 안겨 선인이 되게 한다. 탐욕은 과욕을 만나면 늘 부끄럽게 하여 뉘우치게 된다. 이런 연유로 선인이 불선인의 스승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스승이란 지식을 가르쳐주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인간을 부끄럽게 하는지를 일깨워 터득하게 하는 분이다. 버섯 따는 촌로가 버섯에 관한 지식이 많은 학자를 왜 부끄럽게 했을까? 무엇을 안다는 지식하고 그 무엇을 삶으로 이어주는 덕이 만나면 덕 앞에 식이 고개를 숙이게 된다. 따라서 불선인이 선인에게 박덕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을 새삼 일깨워주니 불선인은 선인의 밑천이 되는 게다. 물론 박덕한 불선인이 후덕한 선인을 비웃고 얕본다면 선인은 바보가 되어 난세가 판을 치고 만다.


살게 하고 죽게 하는 열셋의 무리
生之徒-死之徒   생지도 - 사지도라

出生入死      출생입사
生之徒十有三  생지도십유삼
死之徒十有三  사지도십유삼
나옴은 태어남이고 들어감은 죽음이다. 살게 하는 무리가 열하고 또 셋이고, 죽게 하는 무리가 열하고 또 셋이다. <노자 50장 참조>

생사는 삶과 죽음인지라 둘로 나누어진다는 말일까? 삶과 죽음을 둘로 보는 생각은 작고 얕다 하고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생각은 크고 깊다고 한다. 그리고 보면 사람들은 생사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아마도 거의가 다 작고 얕은 편이다. 삶 따로 죽음 따로 생각하기를 마다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 앞뒤처럼 딱 하나로 붙어있다는 말을 들으면 거의 다 실없는 말 말라며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는 누구나 다 살아간다고 여기지 죽어간다고 믿지 않는 까닭이다. 그런데 하루 살았다고 하면 그 말은 하루 죽었다고 하는 말고 다를까 같을까? 이런 물음에 부딪히면 사가 생을 졸졸 따라다닌다는 생각이 돋아날 수도 있다. 그렇구나! 하루 산 것은 곧 하루 죽은 것이구나! 새삼 생사를 새로 깨달아 저도 모르게 놀랄 수도 있다. 세상에 있는 것치고 없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 죽는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일생이란 가솔린을 ‘만땅’ 넣은 자동차가 그 가솔린을 다 태울 때까지 달리는 것과 같은 셈이 아닌가! 물론 자동차야 가솔린을 다 태우면 다시 주유소에 가서 주유하면 되겠지만 인간이 저마다 허락받은 일생은 딱 한 번만의 ‘만땅’으로 그쳐야 하는 자동차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면 자신에서 일생의 가솔린을 함부로 태워선 안 되겠다는 깨우침에 이를 수도 있는 일이다. 가솔린이 자동차에 동력을 제공해주듯 내 몸뚱이에도 동력을 주는 가솔린이 있어 그것을 생기라고 하는 것이다. 생기란 요샛말로 하자면 ‘살게 하는 에너지’라는 말이다. 내 심신은 들숨날숨으로 생기를 태우면서 일생의 원둘레를 달리는 자동차 같다는 생각에 이룰 수도 있다. 내 몸뚱이를 쉬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라고 상상해볼수록 나에게 허락된 일생이란 딱 한 번 돌 수밖에 없고 되돌아가 다시 달릴 수도 없는 외줄기 원둘레 길인 셈이다. 대학입시에는 재수라는 것이 있지만 인생에는 재수란 없다. 하나의 원둘레 길 같은 일생이란 그 종점은 딱 정해져 있지만 얼마를 달려야 그 종점에 다다를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일생의 원둘레는 사람마다 달라서 일생을 두고 장수니 천수니 요절이니 따지기도 한다. 하여튼 누구든 한 바퀴 일생을 밤낮으로 멈춤 없이 달림이 생사의 일생인 것만은 틀림없다. 달리는 일생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고속도로에 법정속도를 지키면서 달리는 자동차도 있고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도 있고 폭주하는 자동차도 있듯이 인생의 달림도 그러한 게다. 자동차는 속도에 따라 가솔린을 많이 태우기도 하고 조금 태우기도 하듯이 사람도 생기를 많이 태우게도 하고 적게 태우게도 하는 것이다. 생기를 태우게 하는 것들을 일러 생지도-사지도라고 한다. 그 생사의 무리가 몇이냐 하면 열하고 셋이라 한다. 그 열셋 즉 <희로애락애오구>일곱하고 <안이비설신의> 여섯을 합쳐 십삼도라고 한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사랑과 싫음, 그리고 두려움 등이 생기를 태우면서 일생의 속도를 주물러대고, 눈은 아름다운 모습을 탐하고 귀는 아름다운 소리를 탐하며 코는 향기를 탐하고 혀는 맛을 탐하며 몸은 감촉을 탐하고 마음은 온갖 욕심을 싣고서 일생을 끌고 가는 생기를 쥐락펴락 한다. 이놈의 십삼도가 생사를 밀고 당기고 밀치고 설치면서 일생을 달리는 내 몸뚱이의 생기를 탕진하고 마는 무리들이다. 저마다의 일생을 스포츠처럼 여기고 생사의 십삼도를 태우면서 환호할 것 없음을 일찍 깨우칠수록 한 바퀴만 돌고 말아야 하는 인생을 함부로 험하게 내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애달픈 인생이다. 글/ 윤재근 정리/ 하동뉴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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