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이런 장관도 있었다.
[노년의 고동소리] 이런 장관도 있었다.
  • 하동뉴스
  • 승인 2021.06.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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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텔레비전 화면을 떠들썩하게 달구는 장관 인사 청문회를 시청하다가 자주 옛날 장관이나 정치인들이 남긴 감명 깊은 이야기들을 되새겨 본다. 이승만(李承晩) 정권 시절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자 애쓴 박술음(朴術音) 장관이 남긴 일화도 그중의 하나라, ‘옛 적에 그런 장관도 있었는데…’하고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권력 쥐었다고 무리를 범하고 돈 많다고 나 보란 듯 가슴을 내민다든지 신분이 높아졌다고 잘난체하는 것은 세상사는 지혜를 모르는데서 비롯된 바보스런 짓이다. 내 앞에 보이는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세상을 대하듯 자세를 낮춰야만 평가가 높아진다. 박술음 장관은 교육계에서 영문학 강의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6·25 전쟁 중에는 김정열(金貞烈) 공군참모총장의 외국어 보좌관으로 일했다. 박장관은 그의 제자인 백두진(白斗鎭) 재무부 장관의 천거로 국무위원에 올랐다. 

 그런데 그의 소재가 쉽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급하게 전국의 경찰 망을 총 동원, 가까스로 그의 소재를 찾아 내 제5대 사회부 장관직을 맡겼다. 박 장관은 능숙한 영어실력으로 유엔 원조기관 등에 우리나라의 빈곤한 참상을 호소, 많은 외국 원조를 끌어 들여 배곯는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 줬다. 그는 장관 재임 중 ‘노동조합법’과‘근로 기준법’ 등 사회 입법을 통해 힘없는 근로자들의 인격을 보살피고 막장 근로자들의 긍지를 북돋아 주었다. 뒤에 문교부 장관 물망에 올랐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한글 맞춤법’ 개정 명령에 반발, 장관직을 마다했다. 그때만 해도 ‘지당(至當) 장관’·‘읍소(泣訴) 장관’으로 대통령 앞에서 무조건 굽실대거나 눈물을 보여야만 최고 권력자 이승만의 총애를 받아 오랫동안 자리에 버티고 앉아 활개를 칠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만, 박 장관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참모습을 지켜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박술음 장관이 장관 자리에 있을 때 막내딸 혼사를 치렀다. 그는 출근길에 가족들만 급히 불러 모아 빈상에 맹물 한 그릇만 달랑 떠 놓고, 출근 준비에 바쁜 자기의 비서관을 불러 사윗감과 막내딸을 나란히 세운 앞에서 주례를 맡겨 혼례를 마쳤다. 별안간 결혼식 주례가 된 비서관은 당황한 끝에 혼주인 장관이 시키는 대로 몇 마디 말로 주례사를 마쳤다. 청빈을 신조로 삼은 참 선비다운 기발한 풍모였다. 집권 자유당에서 당의 이미지를 높이고자 박술음 장관을 입당시키려 백방으로 구슬렀다. 그러나 정치권의 생리를 체험한 박장관은 끝내 권력에 가까이 가기를 마다하고 결국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임식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물러남이 과히 초라해 보이지는 않습니까? 교육자 운명을 타고난 몸이 뜻하지 않게 나라의 부름을 받아 ‘장관’이라는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일 할 수 있었음과 큰 과오 없이 직을 물러날 수 있는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조용히 물러갑니다!” 역사에 남을 간단명료한 퇴임사였다. 

그는 초연히 대학 강단으로 되돌아갔다. 1955년 한국외국어 대학 교수가 되어 활동하다가 1963년 학장을 맡아 일하면서 오늘날의 한국외국어대학교 모태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곧이어 총장이 되었다. 1977년 정년을 맞아 퇴임한 박술음 총장은 명예교수로 활동하다가 1983년 2월 운명했다. 깨끗하고 올곧은 생애 81년이었다. 박술음 선생은 1919년 송도고등보통하교 재학 시절 3·1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소년 독립 운동가였다. 정부는 그의 국가에 대한 공적을 인정,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2011 한국외대와 ‘박술음 선생 추모 사업 추진 위원회’는 서울 이문동 한국외대 서울 캠퍼스에 박술음 선생 동상을 세웠다. 동상 제막 행사에서는 제자 60여명이 함께 쓴 추모 문집 ‘지구촌 시대를 준비한 선각자 박술음 선생과 외대의 탄생’이 유가족과 학교에 헌정됐다. 정치가 정객들의 출세의 장으로만 작용하면 백성들은 고달프다. 정치인의 최대 덕목은 욕심을 버리고 백성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사)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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