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 로마 교황청과 한반도의 봄
 [노년의 고동소리] 로마 교황청과 한반도의 봄
  • 하동뉴스
  • 승인 2021.07.13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왕이 나라의 주인이던 왕조 시대 백성들 목숨은 왕의 손에 달려 있었다. 왕은 백성들 가운데 자기 마음에 걸리적 거리는 자는 가차 없이 목숨을 빼앗아 버렸다. 조선조 말엽 조선이라는 나라는 서양에서 들어 온 천주교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조상 제사를 받드는 일을 인륜의 근본으로 삼아야하는데, 천주교가 들어와 백성들이 조상 모시는 제사를 소홀이하고 창조주 하나님 공경하기를 앞세우니, 세상이 돌변한 것이었다. 권력에 시달리는 하층 서민들은 오직 ‘성경’을 바탕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복락을 누리려 했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나라에서 하나님 공경에 정신을 쏟는 천주교도들의 신앙에, 왕을 둘러싼 양반 집권 세력은 위기감은 느꼈다. 곧 나라가 주저앉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나라 천주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따라 들어온 종군 신부에 의하여 최초로 전래 되었지만 워낙 강한 유교 사상에 부딪혀 시들해 졌다. 훗날 광해군 때 북경을 드나들던 학자들에 의하여 움트기 시작, 허균(許筠)이 북경을 왕래하면서부터 움텄고, 병자호란 때 인질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청국에서 천주교 서적을 갖고 들어와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정조 때 정약전(丁若銓)·약종(若鍾)·약용(若鏞) 3형제가 사대부 양반 신분으로 천주교에 입문,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급기야 천주교가 밑바닥 서민 사회에 마른 논에 물들어 가듯 스며들자 기득권층은 ‘이러다간 나라가 엎어지겠다’ 싶어 천주교 박해를 국정 최고 정책으로 삼아 천주교도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환란 속에 정약종은 옥사하고 정약용·약전 형제는 전라도로 귀양 갔다. 세례를 받았던 왕족 은언군(恩彦君) 이인(李?)과 그의 처 송씨, 며느리까지 몰죽음을 당했다. 은언군은 영조의 손자였다. 하늘이 놀랄 이 국가적 비극을 역사는 ‘신유사옥(辛酉邪獄)’이라 적었다. 신유년에 요사한 자들을 많이 죽였다는 뜻이었다. 한 해 동안 공식적으로 처형된 천주교도가 300명이 넘었다. 문명국으로 발 돋음한 서구 천주교 국가들은 조선을 깨치지 못한 미개한 나라로 폄하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해 나라의 주인이 왕이 아니라 백성인 시대가 되었다. ‘백성(百姓)’은 당당한 ‘국민(國民)’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나라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나라’가 아니면 존립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광복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주도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천주교도 장면(張勉)을 교황청으로 보내 세계 각국 추기경들을 움직여  대한민국 정부 승인을 받아 나라의 기틀을 세웠다. 교황청 특사로 활약한 장면이 부통령이 되었다.

 일찍이 유엔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인물로 조선의 정약용을 선정하였다.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2019년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신부로 25세 꽃다운 나이로 순교한 김대건(金大建)을 또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인물로 선정, 한국인의 존재감을 세계에 알렸다. 두 분 모두 천주교와 관련이 깊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대건 신부는 본관이 김해, 어릴적 이름은 김재복(金再福), 족보에는 김지식(金芝植)으로 실렸다. 세례명은 안드레아, 충청남도 당진 솔뫼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천주교 가문이라 증조부 김진후(金震厚), 할아버지 김택현(金澤鉉), 아버지 김제준(金濟俊) 모두 줄줄이 천주교도로 순교, 목숨을 잃었다. 지금까지 한국인으로 김수환(金壽煥)·정진석(鄭鎭奭)·염수정(廉洙政) 세 추기경이 탄생하였다. 구한말 쇄국 정치라는 철벽을 뚫고 천주교를 통해 서구 문물과 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 온 것은 그야말로 동토에 봄 햇살이 비췬 격이었다. 지난 6월 11일, 교황청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의 천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兪興植) 라자로 대주교를 교황청 고위직인 성직자성 (聖職者省)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한국인이 교황청 장관에 임명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성직자성 장관은 전세계 사제들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직위로, 사제들의 활동을 감독·심의하는 것은 물론, 신학교 관할권도 갖고 있는 핵심 자리다. 통상 임기가 5년인 성직자성 장관으로 한국인이 발탁된 것은 한국 천주교회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임기중 한반도 천주교 성지 평양 방문을 꿈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흥식 성직자성 장관의 힘을 빌려 북한 방문 꿈을 현실화 할수 있을 것으로 교황청 주변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한반도에 그야말로 봄이 앞당겨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사)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회장 정연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