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연재] 피는 꽃은 이쁘고 지는 꽃은 미운가
  • 하동뉴스
  • 승인 2021.07.27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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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제1장: 낳아주되 갖지 않는다
제2장: 성인께는 정해 둔 마음이 없다
제3장: 경솔함은 곧장 뿌리를 잃는다
제4장: 제 태어난 바를 싫어하지 말라
제5장: 배우기를 끊으면 걱정이 없다

-짖는 개는 물지 못한다
善勝敵者不與 선승적자불여라 

善爲士者不武 선위사자불무
善戰者不怒   선전자불로
善勝敵者不與 선승적자불여 
善用人者爲之下 선용인자위지하

무사로 잘 된 이는 무력을 쓰지 않고 잘 싸우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자는 드러내 보이지 않고 사람을 잘 쓰는 이는 그 아래가 된다. 이것들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한다. <노자 68장 참조>

잘 이기는 투견은 짖지 않는다. 이빨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 까닭이다. 잘 이기는 투계는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다. 갈퀴를 들키지 않아야 하는 까닭이다. 적을 상대하여 이기자면 약점을 들키지 말아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강점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상대를 얕잡아 보고서도 이기는 경우란 거의 없다. 이렇게 하여 싸워서 적을 이긴다 해도 최선의 승자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쪽이어야 최선의 승자라 할 수 있는 까닭이다. 바둑은 승패를 짓는다. 물론 아주 드물게 비기는 경우가 있다지만 흑이 백에게 네 집 반을 먼저 주고 승패를 내는지라 무승부란 나기 어렵다. 바둑판에는 반집이란 없고 오로지 숫자로써만 있는 승패를 결정짓는 술수인 셈이다. 그러나 이 반집이란 승패를 가름하기 위한 것이지 바둑에는 크게 보아 싸움 잘하는 바둑이 있고 집계산을 잘하는 바둑이 있는 편이다. 집내기 바둑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바둑인 셈이다. 승패를 낼 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바둑이 싸워서 이기는 바둑보다 더 윗길이라고 보아도 된다. 왜냐하면 바둑돌을 죽이지 않고 승패를 내기 때문이다. 바둑은 승패를 가름하는 판인지라 바둑판은 전쟁터와 같고 바둑돌은 병사와 같다. 그런 바둑돌을 죽이지 않고 집을 차지한다는 것은 피 흘리지 않고 집을 차지하는 셈이니 바둑돌 잡아내고 집 차지하는 쪽보다 그 전술 전략의 숨김이 윗길인 셈이다. 싸움바둑은 싸우겠다는 뜻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으니 상대도 그 뜻을 알아채게 돼 속셈을 결국 상대에게 보여주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나 집바둑은 머릿속 바둑판에서 집 차지 계산이 치열할까 바둑판에는 그 속셈이 드러나지 않아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바둑판 싸움의 선승을 이끌어낸다. 이처럼 선승은 불여하는 것이다. 주지 않음이 불여이다. 함께하지 않음도 불여이다. 얕은 물은 흐르는 소리로 시끄럽지만 가로막은 큰 돌을 밀어내 치우지 못한다.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르지만 흐름을 막는 장애물이 있으면 밀쳐버리고 흘러간다. 얕은 물은 소리 내어 그 힘을 드러내나 별것이 아니지만 깊은 물은 괴력은 결코 드러나지 않지만 거침없이 흘러가게 한다. 이 또한 선승의 불여이다. 깊은 물이 흐름을 가로막는 것들과 함께하지 않고 물길을 따라 흘러가듯 적을 마주하여 잘 이기는 자는 적과 함께하지도 않을뿐더러 적에게 강점이든 약점이든 드러내지 않는다. 왜 짖는 개는 물지 못한다고 하겠는가? 드러낸 이빨로는 물지 못하는 법. 다문 입속에 감추어진 이빨이 무섭고 검객의 손에 들린 칼보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비수가 더 무서운 칼날이다. 뛰어난 무사는 가슴속에 품은 비수 같아 칼부림을 하지 않고서도 상대를 굴복시키고, 뛰어난 무사는 어떠한 난관에도 태연할 뿐 성내지 않는다. 성내는 마음은 늘 조바심으로 마음을 묶어 한낮의 부엉이 꼴이 되기 쉬운 법인지라 상대에게 속셈을 그대로 드러내버리고 만다. 어차피 이제는 사람 사는 세상이 마치 싸움판처럼 펼쳐지고 있는 중인지라 전쟁터에서만 선전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와중에서도 상대를 심복시키는 선전이 필수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싸움판 같지만 전쟁판과 달라 져주는 쪽이 오히려 이기는 경우가 허다함은 상대를 높여주고 자기를 낮추는 데 그 비밀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결국 사람을 쓰는 일이다.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이 일을 성공시키고 그렇게 못한 사람은 일을 망친다. 요새말로 ‘갑질하는 사람’은 결국 필패하고 마는 것은 상대를 얕보고 얕은 속을 다 드러내 뒷덜미만 잡히고 마는 까닭이다. 


-온 세상에서 물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天下柔弱莫過於水 천하유약막과어수라

天下柔弱莫過於水 천하유약막과어수
而攻堅强者莫之能勝 이공견강자막지능승
基無以易之     기무이역지

온 세상에서 부드럽고 약함에 물 보다 더 넘는 것은 없다. 그리고 굳고 강함을 치는 것에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그것을 함에 그것을 대신할 것이 없다. <노자 78장 참조>

지금은 아이를 병원 가서 낳지만 옛날은 아이를 집에서 낳았다. 갓난애가 태어나면 그 집은 온통 그 핏덩이를 위해 온 신경을 쓴다. 평소 같으면 사랑채 어른한테 신경을 써야 했지만 사랑채 어른도 뒷전으로 밀려난다. 대문이나 사립문에 금줄이 쳐지면 갓난애가 태어났음을 마을 사람들이 알고서 혹시라도 부정 탈세라 그 집을 지나면서도 삼가 조심하고 볼이 있어도 뒷날로 미루고 드나들지 않는다. 그래서 핏덩이는 한 집안에서만이 아니라 한 마을 모두가 받드는
가장 강하고 귀한 목숨이 된다. 갓 태어난 핏덩이는 부드럽고 나약하기로 말하면 그보다 더할 것이 없지만 온 마을 장정들도 그 핏덩이 하나를 못 당한다. 이처럼 알고 보면 굳고 단단함을 부드럽고 약함이 이기는 것이 자연에 통하는 힘이다. 하늘을 빙빙 돌던 솔개가 땅으로 내리치면 햇볕 아래 모래밭에서 알을 품거나 새끼를 품고 있던 모든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마치 폭격기처럼 솔개를 향해 내리꽂히면서 공격을 감행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솔개가 새끼 갈매기를 낚아첼세라 어미 갈매기들은 일제히 목숨을 걸고 솔개와 싸움을 마다 않는다. 알에서 막 캐어난 새끼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너나 할 것 없이 어미갈매기가 모두 달려들어 솔개를 물리친다. 이 역시 갈매기 사회에서 새끼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음을 잘 보여준다. 물론 어디 갈매기만 그렇겠는가? 어느 생물이든 제 새끼를 보호하고서 온갖 정성을 들인다. 사자나 악어가 제 새끼를 물고 가는 꼴을 보면 저것이 사자이고 악어냐는 생각이 앞서기도 한다. 이처럼 자연에서는 가장 약하고 부드러운 것들이 가장 세다. 이러한 이치를 흘러가는 물이 잘 증명해주는 것이다. 온 세상에서 물보다 더 유약한 것은 없다. 하도 부드럽고 연약하기에 물이 스며들지 못할 것이란 하나도 없다. 강철 속이든 바위 속이든 물은 스며들고 목숨이 있는 것이라면 스며든 물을 마셔야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물은 산 것이든 죽은 것이든 가리지 않고 스며들기도 하고 날아오르기도 하고 아래로 흘러 내려가기도 한다. 이 땅덩이에도 온갖 목숨이 살고 있는 것은 물이 땅에도 차 있고 공중에도 차 있는 덕이다. 허공에 물기가 떠 있어야 하루살이도 살아간다. 집안 농짝에 넣어둔 습기제거 제품을 한두 달 뒤에 끄집어내는 주부치고 ‘어머나’ 놀라서 감탄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텅 비었던 것이 그 안에 물이 가득차서 농짝을 나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농짝 안에도 물기가 떠 있는 셈이니 세상 천지에 물이 없는 곳이란 없다. 이처럼 어디서나 물이 있음은 물이 유약하기 때문이다. 태풍이 몰아쳐 아름드리를 뿌리째로 뽑아 넘기지만 육 척 장신으로 자로 오른 억새풀은 꺾지 못한다. 굳고 단단한 것은 태풍이 요절낼 수 있지만 연약한 것은 그럴 수 없다. 태풍이 몰아쳐 물보라를 치게 하지만 물을 산산이 요절낼 수 없다. 그냥 출렁일 뿐이지 물이 돌처럼 부서질 리 없고 불꽃처럼 꺼질 리도 없어 출렁거리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물은 여전히 제 모습대로 그냥 그대로 자연스럽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아래로 내려가 땅속까지 더 내려가 지하수로 흐르다가 샘물이 되어 솟구쳐 실개천을 거쳐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모습 앞에서 가장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가장 굳고 단단한 것을 이겨내는 이치를 자연이 외면할 수 없게 가르쳐준다. 그러나 사람은 강하면 이기고 약하면 진다고 우기려 든다. 그래서 물보다 바위가 되기를 바라고 거미줄보다 동아줄 같기를 바라고 세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해야 가시밭길 인생이라는 벌을 짓밟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만용을 부린다. 자해에 그치게 하고 마는 강기만 쫓다가 스스로 부러져버리는 인간은 물이 왜 강한지 모르는 편이다.  글/윤재근 정리/하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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