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블랙홀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블랙홀
  • 하동뉴스
  • 승인 2021.07.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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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박순현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헝클어진 실타래다
나는 없어지고
오롯이 스캔된 
너만 남는다
경로추적은 하나마다
북극성처럼 오로지 
너에게 맞추어져 있다
맛도 잃고 삶도 잃고
뜨거운 열애에 구속된다
거부할 수 없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미로 속에
감금된,
모든 이로부터 격리되어 
확진자로 남는다
나는 코로나19

- 반년간지 《시에티카》(2020년 하반기호)

【시인 소개】
박순현 / 경남 함양 출생. 2016년 《시에티카》로 등단. 시집으로 『그녀는 불통 중』이 있음. 현재 하동군 횡천면에 살며, 지역의 문해교실 어르신들과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음. 하동문인협회에서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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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공간의 어떤 별들은 중력으로 인해서 시간이 갈수록 부피가 작아진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부피는 제로가 되고 밀도는 무한대가 되면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고 하네요. 심지어는 빛조차 빨아들여서 검은 구멍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걸 ‘블랙홀’이라고 부르지요.
정말이지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을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에서 ‘코로나19’의 영향을 비껴갈 수 있는 것은 단언컨대 없어 보입니다. 학교도 직장도 심지어 결혼식도 장례식도 맘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모든 곳이 험지이고, 모든 사람이 잠재적인 위협입니다. 한순간도 서로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무서운 역병이 아니라 지독한 열애를 닮았습니다.
이 시에서 화자(시인)는 인간이 아니라 ‘코로나19’ 바이러스입니다. 너(인간)를 만나는 순간 너는 위태롭습니다. 그러니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언제나/헝클어진 실타래”입니다. 나의 경로를 추적하는데 나는 없고 너의 동선만 남고, 네가 접촉한 사람만 남습니다. “북극성처럼 오로지/너에게 맞추어져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있었으니 끝도 있을 것입니다.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가듯이, 격리를 통해서 더욱 가까워지는 역설의 신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코로나19’는 그런 점에서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주려는 신의 기획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남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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