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뜨거운 밥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뜨거운 밥
  • 하동뉴스
  • 승인 2021.08.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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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밥

                                     김용철

공양 중이시다
붕어 할아버지
숟가락 들 때마다
깜박거리는 찌
지난 생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서두르지 않고 드신다

찰기 없는 보리 밥알 사이 사이
쌀 몇 톨이 온기 붙들고
모락모락 김 나는 된장국
곰삭은 김치가 다여도
오물오물 진지 드신다
무명 옷자락 지느러미 흔들며
동그란 눈 깜박이는 강태공에게
마지막 한 숟갈 쓱 내미는
저 뜨거운
누렁 밥덩어리

몸이다
밤 지샌 기다림에 바치는
이 아침의 소신공양이다

― 시집 『지느러미로 읽다』(우리글, 2010)

【시인 소개】
김용철 / 하동군 화개면 범왕 출생. 2004년 《스토리문학》으로 시인 등단. 시집으로 『태공의 영토』 『지느러미로 읽다』 『물고기좌 부나비』 『나비다』 등이 있음. 한국문인협회하동지부 회원. 현재 화개면 범왕에서 ‘클라우드힐 펜션’을 운영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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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그려서 보여주는 상황은 낚시꾼이 던진 미끼를 붕어가 먹고 있는 모습입니다. 낚시꾼의 입장에서 보면 붕어가 걸려든 것이지요. 이제 잡아채기만 하면 낚시꾼은 아침부터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흥미진진한 낚시이야기가 아니라 시가 되는 까닭은 주인공이 낚시꾼이 아니라 붕어이기 때문입니다.
붕어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어릴 적 보았던 할아버지도 같이 등장하십니다. 왜냐하면 떡밥을 먹고 있는 붕어의 모습과 “오물오물” 진지 드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닮았기도 하지만, 마치 이승에서 마지막 공양을 받기라도 한 듯이 “서두르지 않고” “지난 생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진지한 모습에서도 둘은 닮았기 때문입니다.
붕어는 밤새 찌를 노려보며 아침을 맞은 낚시꾼의 기다림을 아는 탓에, 할아버지는 자기를 봉양한 자식들의 노고를 아는 탓에 선선히 자신들의 마지막을 내줍니다. 붕어는 자신의 몸을 내줌으로써 기다린 자에게 한 끼의 “뜨거운 밥”이 되고 싶었을 것이고, 할아버지는 자신의 생을 조용히 지우는 것으로써 자식들에게 “뜨거운 밥”이 되고 싶었겠지요. 그러니 이 비장한 행위를 두고 어찌 ‘낚시’라고 부르겠습니까. 거룩한 자비이고, 숭고한 공양이지요. 시인의 눈은 바로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본 것입니다. 늘 그렇듯이 좋은 시는 독자에게 새로운 눈 하나를 뜨게 해주지요.

(김남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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