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동군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스토링 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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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동뉴스
  • 승인 2021.08.2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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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세월을 견딘 구들도사의 역작, 아자방 따뜻함은 어떻게 100일을 가나

[아자방]지글지글 끓는 방, 온돌의 묘미다.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방식인 온돌이 요즘 일본에서 열광하고 있단다. 노인시설에 온돌이 아니면 입주를 안 한다니, 대단하다.
칠불사 아자방, 그야 말로 ‘아자, 아자’소리가 절로 나는 방이다.
스님들의 겨울 수행인 ‘동안거’ 때 한 번 불을 때면 100일 동안 뜨끈하다는 전설적인 방이다. 100명 쯤 앉아 수행할 수 있다는데 직접 보면 생각보다 넓지는 않다.
신라 효공왕 때, 이름도 멋진 ‘구들도사’가 지은 방이다. 담공화상(曇空和尙)이라고 부른다.
방 구조를 아주 특이하게 아(亞)자형으로 길이 약 8m의 이중온돌로 만들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방이다. 심지어 방벽까지 따뜻하다고 한다.
아자방 구들의 원리는 일단 불을 꺼뜨리지 않는데 있다. 숯가마처럼 불을 꺼트리지 않고, 열기를 오래 잡아두어 열기를 보존하는 기술이 아자방에 숨어있는 것이다.

구들도사가 가야의 6대 지마왕(8~119년)때 사람이라고도 하고, 신라 효공왕(897~911)때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지마왕 때면 거의 2000년, 효공왕 때라면 거의 1100년이 넘은 최소 1000년 묵은 방이다. 구들도사는 금관가야에서 온 사람이라고 하니, 아마도 지마왕 때의 사람인 것 같으나 확실치는 않다.
외형은 그냥 기와집인데 방안을 보면 아(亞)자형이 표시가 난다. 亞자에서 한 중간 부분은 낮고 나머지는 높다. 높은 부분에서 앉아 참선을 하고, 낮은 부분에선 발꿈치를 들고 걷는 수행을 한다.
아자방은 그야말로, ‘구들도사’가 만든 천년의 역작이다. 구렁이도 1000년을 묵으면 용이 되는데, 이쯤이면 아자방이 승천하든지 아자방에 앉은 수행승이 승천하든지 둘 중 하나는 분명 승천한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으로 사찰 전체가 불탔을 때에도 구들은 멀쩡했고, 지은 뒤에 단 한 번도 구들을 수리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아궁이는 지게를 지고 들어갈 만큼 넓고 불을 한번 때면 누군 100일간, 누군 49일간이나 따뜻하다고 한다. 지금은 겨울철에 하루에 한 번 씩 불을 떼고 있다.
옛날에 중국까지 알려지고, 오늘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에 한국의 독특한 난방방식으로 소개돼 있다.
겨울이면 매일 해질 무렵 연기가 나는데, 불을 떼는 장면은 볼 수 없고, 방안을 ‘빼꼼’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방에서 다성으로 불리는 초의선사가 <다신전>을 엮기도 했다. 돌을 지고 30년 세월을 고행한 조능선사가 성불한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아자방에서 공부하는 선승들은 3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들면 눕지 않는다는 장좌불와(長座不臥), 하루 한 끼만 먹는다는 일양식(一糧食), 말을 하지 않는다는 묵언(?言)등 3대 수행 수칙 전통이다.

주련(柱聯)이란 사찰이나 전통가옥에 글귀를 새겨 기둥에 붙여놓은 나무판을 말한다.
칠불사 아자방 주련은 이렇게 적혀 있다.
曇空手藝遠聞唐(담공수예원문당) 담공선사 빼어난 솜씨 멀리 당나라까지 알려졌고
來自金官築亞房(내자금관축아방) 금관가야에서 오시어 아자방을 축조하셨네
巧制奇功窺不得(교제기공규부득) 정교한 공법 기이한 공적 엿볼 수 없으나
令人千萬費商量(영인천만비상량) 사람들로 하여금 천번 만번 생각케 하네
…….

-소여물통 같은 곳에 선 칠불사

‘지리산’은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의 지(智)자와 리(利)자를 따와 지리산이란 이름이 지어졌다.
지리산은 큰 봉우리 3개가 있다. 1915m의 천왕봉과 1732m의 반야봉, 1507m의 노고단이다. 이 3봉 중 반야봉이 지리산의 중심이다.
지리산 칠불사는 이 반야봉의 중허리 해발 800m지점에 있다.
지리산이 문수보살의 이름에서 따왔듯, 문수보살이 계신 곳은 지리산 여러 절 가운데서 칠불사다.
칠불사에는 몇몇 절에서만 볼 수 있는 ‘문수전’이 대웅전 옆에 따로 건물을 지어 모시고 있다.
칠불사엔 문수보살이 칠불암 중창 때 ‘동자승’으로, 또는 ‘나무말을 타고 나타난’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칠불사는 또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형’이라고 해 명당 길지라 한다. 칠불사가 있는 자리는 소여물통이라고 전해 온다.
칠불사는 남쪽만 뚫려있고, 북동서는 막혀 있다. 이 칠불사에서 화개장터 건너편에 보이는 전라도 백운산을 보는 것이 대단한 장관이라 한다. 하동에서 백운산이 보이지 않는 곳은 길지로 보지 않았다 한다. 

-나무 말을 탄 문수보살, ‘흔들흔들, 위태위태, 꼬장꼬장  띨띨 띨띨띨....’ 
불교가 핍박받던 시대, 하동의 원님은 공자 좋아하던 유자(孺子)였다. 
원님은 스님들을 ‘같잖게’ 봤다.
하루는 큰 대궐 같은 칠불사로 갔고, 이곳의 아자방에 들었다가. 좌선한다고 앉은 스님들의 모양을 본 원님은, 그때부터 스님들을 거의 ‘인간 말종’으로 보기 시작했다.
좌선 삼매경에 빠졌다며, ‘졸고 있는 것 같고, 가부좌를 튼 채 방구를 마구 뀌어대고…….’ 
“이중 한 명은 분명 도를 통했을 터. 이번 보름 오시에 하동관아로 와서 나무말을 타고 동헌을 3바퀴를 돌아라. 아니면 사이비에 빠져 부모을 버렸으니 불효의 죄요. 힘써 일하지 않았고 호의호식하니 이 나라의 재물을 쓴 죄다. 나무말을 타지 않으면 절을 비우고 너희를 쫓아버릴 테니 그리 알라.”
핍박받던 시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스님들은 끙끙 앓다가, 날이 돼, 큰스님을 비롯해 스님 수 십 명은 모조리 동헌으로 갔다.
스님들은 그저 할 말을 잃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을 뿐이었다. 두 번 세 번 닦달하며 원님은 “말을 타라”고 했다. 
“말을 타라!!”
“어허, 말을 타래두!!”
경상도 말로 ‘참, 얼척이 없는’ 광경이었다.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스님들은 차마 황당해, 눈만 감고 있었다.
이때 큰스님 뒤에서 코를 질질 흘리던 동자스님 하나가 이주일같은 목소리를 내며, “아이고, 큰스님이 타시게요?”
하곤 스님 얼굴을 쳐다보더니, 다리를 잡고, “제가 타게 해주세용”하곤 마구 어리광을 부리는 게 아닌가. 
그리곤, 마당으로 어정어정 걸어간 동자승, “못 생겨서 죄송해요” 하곤, 누른 코를 팔소매로 한 번 쓱 훔치고, 나무말에 털썩하고 올라타버리는 게 아닌가. 나무말은 움직였을까.
동자승이 나무말을 흔들어 댔지만 꼼짝도 않았다.
모두 기급을 하고 있었다. 원님은 “저런 죽일 놈의 중놈을 봤나”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아랑곳 않고 동자승은 앞뒤로 나무말을 구르며 “이랴, 이랴” 했지만 여전히 움직이질 않았다.
보다못한 원님이 벌떡 일어났고, “저 어린 중놈을 당장....” 하던 순간, 동자승은 말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그때였다. 나무말이 기우뚱하더니 앞뒤로 까딱까딱, 좌우로 흔들흔들하며, 위태위태하고 꼬장꼬장하게 너무도 우스운 모양으로 동헌 마당을 ‘띨띨 띨띨띨띨....’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했다. 두 바퀴를 돈 뒤에는 말이 거꾸로 훌러덩 넘어버리고, 방구까지 “뿡뿡~” 뀌어대고, 콩당콩당 춤까지 추어대기 시작했다. 한 편의 서커스였다.
큰스님은 그가 칠불사 ‘문수보살’임을 알아챘다. 세 바퀴를 돌더니 동자스님과 나무말은 툭 튕기듯 공중으로 솟구쳤다.
“큰스님, 제가 먼저 타 미안해용...먼저 절에 타고 갑니다요.”
벌떡 일어났던 원님이 마룻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고, 벌벌 떨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소년부도와 함께 이 이야기는 두 번째 칠불사에 나타난 문수보살의 현신이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세상에 모습을 보일 땐 동자나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칠불사엔 눈에 보이진 않지만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전 삼삼 후 삼삼’,칠불사 문수전 나무판에 붙어 있는 저 글은 대체 무슨 뜻?

[문수전 주련(柱聯)]칠불사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항상 거주하는 곳이라 한다.
대웅전 옆에 ‘문수전’이 있다.
그런데 ‘문수전’ 맞은편 왼쪽 주련에 ‘읽기 쉽고 해석도 될 것은.....!?’ 이상한 글이 붙어 있다.
‘前三三與後三三(전삼삼여후삼삼)’
읽을 땐 건물의 제일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읽는데, 내용을 왼쪽부터 보면,

千峯盤窟色如籃(천봉반굴색여람) 천 봉우리 깊은 골짜기 쪽빛 같이 푸르른데
誰謂曼殊是對談(수위만수시대담) 그 누가 말하리 문수만나 이야기 했다고
敢笑淸凉多少衆(감소청양다소중) 우습다 청양산 대중이 몇이냐고 하니
前三三與後三三(전삼삼여후삼삼) 전 삼삼 후 삼삼이라 함이여

전삼삼 후삼삼이란 ‘인간이 태어나 깨치기 전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삼계를 이른다. 또 욕계, 색계, 무색계인 삼계도 전삼삼’이라 한다. 후 삼삼은 깨친 후의 ‘과거, 현재, 미래와 욕계, 색계, 무색계’가 삼계인데 이것을 후삼삼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삼계 중 욕계란 ‘음욕과 식욕과 같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세계’를 말하고, 색계란 ‘욕계에서 벗어난 물질의 세계, 욕계와 무색계의 중간’을 말한다. 
무색계란 ‘육체와 물질의 속박을 벗어난 세계, 절대정신의 세계’를 말한다. 서양의 이데아의 세계’를 말한다.
전삼삼 후삼삼이란 진리는 부처가 나시기 전, 나신 후, 가신 후에도 그대로 언제나 있다는 뜻으로, 무착선사란 분이 문수보살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직접 들은 유명한 불교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수보살: 문수보살은 석가모니의 교화를 돕기 위해 부처님이 변신한 모습이다.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날카로운 칼을 지니고 있고, 모든 장애와 번뇌를 없애는 지혜를 지녔다. 몸은 흰색이고 정수리 뒤에 빛이 있다. 전설적으로 이 보살은 중국의 산시성 우타이산에서 1만 보살과 함께 있다고도 하는데, 한국에는 칠불사와 강원도 오대산 등에 있다고 한다. 글/하동군·한국국제대학교 정리/하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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