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먼 곳에서부터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먼 곳에서부터
  • 하동뉴스
  • 승인 2021.11.08 0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먼 곳에서부터

                                        김수영

먼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다시 몸이 아프다

조용한 봄에서부터
조용한 봄으로
다시 내 몸이 아프다

여자에게서부터
여자에게로

능금꽃으로부터
능금꽃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김수영 전집 1』 (민음사, 2018)

【시인 소개】
김수영 / 1921년 서울 종로에서 출생. 1946년 시 「묘정(廟庭)의 노래」 발표로 활동 시작. 4·19 혁명 이후 죽기까지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시와 시론, 시평 등을 잡지, 신문 등에 발표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함. 1968년 6월 15일 교통사고로 사망. 시집 『달나라의 장난』 외 다수와 『김수영 전집1·2』 이 있음.

------------------------------------------------------------------------------------------------------------------------------------------------------------------------------------------------------------

김수영 시인은 올해가 탄생100주년이 되는 해이지요. 한 세기 전에 태어나서 이미 반세기 전에 떠났는데도 한국문학사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연구자들에게 김수영 시인은 단연 문제적인 작가이고, 후배 시인들 중에는 아직도 그의 시에서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961년에 발표한 이 시도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해서 분석하고 연구하는 텍스트입니다. 얼핏 보기에 길이도 짧고, 내용도 단순해 보이는데 의외로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첫 구절부터 “먼 곳에서부터/먼 곳으로/다시 내 몸이 아프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지요. 하지만 저는 그냥 쉽게 읽습니다.
만만한 ‘봄시’로 읽는 거지요. 봄소식은 늘 멀리서 오는 법. 1연은 먼 곳에서 봄은 올 텐데 아직도 겨울이라는 겁니다. 2연은 조용하게 다가오는 봄 때문에 ‘다시’ 내 몸이 아프다는 것, 3연에서는 봄이 돼도 오지 않는 사랑하는 ‘여자’ 때문에, 4연에서는 그 여자를 닮은 능금꽃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내 몸이 아프다”고 읽는 거지요. 물론 시종일관 몸이 아프다고 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더 아프다고 봐야겠지요. 
유명한 시인의 시는 그 명성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이 혼란스럽고 고통스럽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보다 내 느낌이 더 중요한 게 시 읽기입니다. 하긴 어디 시 읽기만 그렇겠습니까?

(김남호/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