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사랑의 발명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사랑의 발명
  • 하동뉴스
  • 승인 2021.11.2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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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발명

                                      이영광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도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시집 『나무는 간다』(창비, 2013)

【시인 소개】
이영광 / 1965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자랐음.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직선 위에서 떨다』 『그늘과 사귀다』 『물불』 『나무는 간다』 『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등이 있음.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현재 고려대학교 미디어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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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시를 읽는 동안 몇 구절이 가시처럼 우리 가슴에 콕 박힙니다. 그 가시 중 가장 놀랍고 아프고 감동적인 가시는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다는 구절입니다. 사랑을 ‘발견’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사랑을 ‘발명’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발견’이란 이미 있었지만 이제야 그것을 알아보았다는 뜻이고, ‘발명’이란 이제까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새롭게 알아보는 거야 어느 정도 노력하면 가능할 수 있겠지만,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발견은 훈련으로 가능하지만, 발명은 절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사랑을 발명해야 했을까요. 이 시의 감동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너무나 사는 게 힘들어하는 사람을 지켜보다가 더는 지켜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하는 ‘나’의 위대함이 이 시를 번쩍 들어 올립니다.
살다보면 정말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 파고 들어가” 조용히 죽고 싶을 때가 어디 한두 번입니까? 그럴 때는 옆에 친구든 애인이든 누구 하나 없다면 당장 무너질 듯이 위태롭지요. 그럴 때 나를 위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입니다. 이 시가 아름다운 건 ‘너’를 위해 이렇게 절박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는 ‘나’가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가 ‘나’를 위해서 사랑을 발명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김남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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