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견딜 수 없네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견딜 수 없네
  • 하동뉴스
  • 승인 2022.09.06 11: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견딜 수 없네

                                         정현종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후략)

-제1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시인 소개】
정현종 / 1939년 서울 출생.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첫 시집 『사물의 꿈』 이후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등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냈음.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만해문학대상 등을 받았고, 2004년에는 칠레 정부에서 전 세계 100인에게 주는 ‘네루다 메달’을 받았음.
-----------------------------------------------------------------------------------------------------------------------------------------------------------------------------------------------------------

우리는 늘 아프지요. 다만 견딜 수 없이 아프거나 견딜 만하게 아프거나 그 차이일 뿐, 안 아픈 날은 없습니다. 안 아픈 중생이 어디 있겠어요? 이 시에서 시인은 무수한 아픔들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세월이 가고 아픔에 내성이 생기면 덜 아플 줄 알았는데, 세월이 갈수록 마음이 더 여려져서 가는 8월도 아프고, 9월도 10월도 심지어 흘러가는 것들은 죄다 견딜 수 없게 합니다.
흐른다는 건 시간의 일이고, 시간은 우리에게서 영원히 돌려받을 수 없는 것을 빼앗아 가거나, 영원히 돌려줄 수 없는 것을 남겨놓고 가지요. 돌려받을 수 없는 목록 중의 하나는 젊음일 테고, 돌려줄 수 없는 목록 중의 하나는 늙음일 것입니다. 빼앗긴 젊음도 남겨놓은 늙음도 결국은 견딜 수 없이 아픈 것들이지요.
늙음도 고통스럽지만, 젊음도 못지않게 고통스럽다는 걸 우리는 늙으면서 알게 되지요. 이래저래 이번 생은 견딜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다는 건 아직 우리가 무언가를 견디고 있다는 뜻이고, 아직 우리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아직은 견딜 만하지 않습니까?

(김남호 / 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