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그래도 추석은 추석이다
[데스크 칼럼]그래도 추석은 추석이다
  • 하동뉴스
  • 승인 2018.09.21 0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각종 뉴스가 귀성길 귀갓길 교통량 예측이다. 워낙 귀에 익은 이야기여서 무슨 정보라도 될는지 의문이지만, 빠뜨릴 순 없는 소식이다. 올 추석 연휴 기간 귀성길 시간은 얼마나 소요될지 궁금해 한다. 서울~부산, 부선~하동 귀성길과 귀갓길 시간은 멀마나 소요될까? 전국 어디에서든 귀성전쟁은 올해도 모면하기 어렵겠다. 사나흘 사이 전체 인구의 70%가 일거에 대이동을 시작한다. 말 그대로 민족 대이동이긴 하나 그 역사는 기껏해야 50년 남짓하다. 전통이라 하기에는 너무 짧고, 그렇다고 오래 지속될 것 같지도 않다.

추석 귀성객은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10만 명을 넘지 않았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귀성객은 크게 증가했다. 귀성전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2000년대에는 3000만 명의 귀성객이 이동했다. 도시화와 인구 추이를 감안하면 귀성인파는 이미 정점을 찍은 듯하다.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르면 20년 뒤에 이런 광경은 사라질 것이다. 2038년께면 이 같은 귀성전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인구감소에 따른 당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시절 도시의 고단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우리의 명절인 설·추석은 남다르다. 고향을 찾고 부모님을 만나고 가족 친지들과 함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안식을 찾아가는 회귀본능 같은 것이다. 고향이 품어주는 어머니 가슴처럼 말이다. 그래서 추석의 의미는 마냥 따뜻하고 즐거워야 했을 법하다. 명절이 싫어도 내색하면 안 되는 하나의 주술이기도 한 것이다. 귀성전쟁이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그 특유의 풍속으로 여기면서 이해를 하고 있는 건 이런 영향일 게다.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 추석 풍경도 참 많이 변했다. 추석의 원형은 추수를 앞둔 농촌의 경사다. 추석이라고 한다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던 사람들이 고향의 부모 형제를 찾아오는 그런 명절인 추석이다. 또 추석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의 몫이다. 이들에겐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 고향이란 개념이 희박하고 부모의 고향을 동일시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추석은 휴가 이상의 의미는 없는 듯하다. 가장 바람직한 명절 쇠기는 가족여행이다. 해외로 나설 수 있으면 더 좋고 여건이 어려우면 국내 명승지 호텔이나 콘도도 나쁘지 않다.

올해도 이번 연휴 해외여행 예약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국제선 공항은 벌써부터 붐빈다. 국내외를 합쳐 추석연휴 여행객이 10명 중 3명꼴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불황이 극심하다 해도 명절 여행의 증가세가 확연한 걸 보면 한때 유행이라기보다 추세가 분명하다. 사실 관습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요즘세대의 추석이 부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들을 따라한들 왠지 허전한 가슴이 온전히 채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이 안겨주는 결실에 대한 감사, 공동체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 이웃과의 유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베풂, 낯선 이들을 향한 관용과 배려 등 이 모두가 추석이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명절 전후 더 소외되기 마련인 이웃들에 눈 감고, 더 극명하게 대비되는 불평등에 쇳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정녕 즐거운 추석이 되는 조건은 풍성한 음식도, 화려한 옷도, 과시할 만 한 돈도 아닐 것이다. 추석 풍경이 변하고, 저마다 의미가 다르겠지만 작은 일에 감사하고, 하찮은 것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추석 명절은 과연 무엇일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