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여백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여백
  • 하동뉴스
  • 승인 2020.03.30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백

                (김종환 작사·작곡 / 노래 정동원)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늙어가는 게 슬프겠지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저녁이면 벗게 되니까

내 손에 주름이 있는 건 길고 긴 내 인생에 훈장이고
마음에 주름이 있는 건 버리지 못한 욕심의 흔적

청춘은 붉은 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더라
마음에 따라서 변하는 욕심 속 물감의 장난이지
그게 인생인 거야

전화기 충전은 잘 하면서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네
마음에 여백이 없어서 인생을 쫓기듯 그렸네
마지막 남은 나의 인생은 아름답게 피우리라

ㅡ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중에서

【가수 소개】
정동원 / 2007년 하동군 진교면에서 태어나 진교초등학교를 졸업. 2018년 전국노래자랑에서 우수상 수상. 2019년에 1집 앨범 <miracle>로 데뷔. 2020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TOP7 결승전에서 5위를 차지함.

--------------------------------------------------------------------------

한나절을 ‘TV조선’의 예능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 TOP7의 결승전 무대에서 정동원 군이 부른 <여백>을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청아하면서도 우수가 깃든 목소리에서 터져 나오는 애틋한 감성도 놀랍지만, 가사도 들을수록 무릎을 치게 합니다. 이게 시가 아니라면 무엇이 시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호의 <시로 여는 세상>에서는 시가 아닌 <여백>의 ‘가사’를 뽑았습니다.
그림은, 특히 동양화에서는 ‘여백’이 성패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여백을 통해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드러낸다는 뜻이지요. 우리의 삶도 그림과 다르지 않아서 마음의 여백을 잃고 욕심으로 채우다보면 실패하게 된다는 거지요. 가벼운 통찰과 섬세한 감각으로 버무려진 가사는 대체적으로 쉽게 공감되지만 시청자를 휘청하게 한 결정타는 아마도 이 구절일 겁니다. “전화기 충전은 잘 하면서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네”
우리 문학은 오랫동안 ‘문학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민해 왔습니다. 문학성이 강하면 상대적으로 공감의 폭이 줄어들어서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대중성이 강하면 문학적인 요소가 부족해서 비평가들로부터 외면당하지요. 대중과 비평가 모두에게 주목받기란 사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불가능한 지점을 우리 지역의 ‘트롯 신동’이 노래로 허물었다는 점에서 통쾌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남호 / 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