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곰곰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곰곰
  • 하동뉴스
  • 승인 2020.05.26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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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안현미

주름진 동굴에서 백 일 동안 마늘만 먹었다지
여자가 되겠다고?

백 일 동안 아린 마늘만 먹을 때
여자를 꿈꾸며 행복하기는 했니?

그런데 넌 여자로 태어나 마늘 아닌 걸
먹어본 적이 있기는 있니?

-시집 『곰곰』(랜덤하우스중앙, 2006)


【시인 소개】
안현미 / 1972년 강원도 태백 출생. 2001년 <문학동네>신인상에 「곰곰」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불편’ 동인으로 활동 중. 시집으로 『곰곰』, 『이별의 재구성』, 『사랑은 어느 날 수리된다』가 있음. 제28회 신동엽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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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모티프로 삼고 있습니다. 하느님인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아래에서 나라는 세울 때, 인간이 되고자 찾아온 곰과 호랑이에게 ‘시험’을 내리지요. 쑥과 마늘만 먹고 백 일을 버티는 자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아시다시피 곰은 “아린 마늘만 먹”고 여자가 되었다지요.
이 시는 여기서부터 묻습니다. 그래, 넌 여자가 돼서 행복했냐고? 아니, 여자가 된 후에도 마늘 아닌 걸 먹어본 적이 있기는 있었냐고? 양성평등을 넘어 오히려 남자가 역차별 받고 있다고 불평이 비등한 이때에 이 무슨 전근대적인 질문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 시는 겉으로는 여성들에게 묻는 것 같지만, 그 이면에서는 남성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흑인들이 백인의 노예로 살아온 역사는 고작 4백년 정도이지만, 여성이 남성의 노예로 살아온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고 하지요. 아직도 우리의 엄마와 아내와 누이가 아린 마늘만 먹고 있는 건 아닌지 남자들은 주위를 세심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여자가 곰이 아닌 사람이 될 때 비로소 남자도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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