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꼬리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꼬리
  • 하동뉴스
  • 승인 2021.12.28 08: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꼬리

                              이서린

저 꼬리 봐라
대문을 들어서기도 전
맹렬하게 흔드는 저 꼬리 좀 봐라
때려야만 팽팽 돌아가는 팽이보다 오래
쉬지 않고 돌리는 순정한 것들
긴 혓바닥 선홍의 속살 보이며
순식간에 달려와 핥는 애정의 행각
생각보다 마음보다 먼저 반응하는
몸의 기억
격하게 꼬리 치는 본능적인 사랑
당신 보여?
당신만 보면 숨 가쁘게 꼬리 치는 내 마음
먼발치 당신만 보면 이미 피어나는 내 얼굴
나를 보면
당신도 저렇게 꼬리 쳐 줄래?

-시집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파란, 2021)

【시인 소개】
이서린 / 경남 마산 출생.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저녁의 내부』 『그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가 있음. 김달진 창원문학상, 형평지역문학상 수상.
-------------------------------------------------------------------------------------------------------------------------------------------------------------------------------------------------------------
아마도 꼬리가 없다면 개를 좋아하기가 힘들겠지요? 개에게 꼬리는 얼굴보다도 훨씬 표정이 풍부하지요. 상대를 좋아할 때와 싫어할 때, 무서워할 때와 사랑할 때, 그리고 심심할 때와 배고플 때의 꼬리는 각각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그저 꼬리라는 한 개의 ‘선분’으로 저렇게 다양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정서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게 놀랍지요.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주인을 반기는 개의 꼬리를 보면 감탄하게 됩니다. 꼬리만이 아닙니다. 혓바닥에서부터 털 하나에 이르기까지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하지요. “생각보다 마음보다 먼저 반응하는/몸의 기억” 그렇지요, 몸이지요. 생각하고 계산하는 ‘머리의 사랑’이 아니라 “격하게 꼬리 치는” ‘몸의 사랑’, 이럴 때는 주인도 무의식적으로 개를 껴안지요.
현대인들은 유독 개를 좋아합니다. 그만큼 외롭다는 뜻이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에 굶주렸다는 뜻이지요. 나에게만 모든 것을 허락하는 자의 순수함과 충직함 앞에서 감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때 꼬리는 몸통보다 크고 위대하지요.
하지만 꼬리는 엉덩이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눈에도 있고 가슴에도 있고 심지어 혓바닥에도 있습니다. 있지 않아야 할 곳에 있는 꼬리는 위험합니다. 그건 흉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새해는 임인(壬寅)년, 호랑이해입니다. 호랑이 꼬리는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밟았다가는 큰일 납니다.

(김남호/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