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동 문화관광스토리텔링- ‘이야기가 있는’ 경남 하동
[연재] 하동 문화관광스토리텔링- ‘이야기가 있는’ 경남 하동
  • 하동뉴스
  • 승인 2022.03.22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동문화관광스토리텔링-악양면 계속

용이집(강청댁)-남편을 사랑하지만 이놈의 남편 용이는 노상 월선만 바라본다. 강청댁은 강짜 심한 여자라는 평도 있다. 늘 월선을 욕하고, 용이에게 심한 패악을 부린다.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으로 호열자로 죽는다. 토지를 읽다보면 용이와 월선의 사랑은 불륜이 아닌 아픔으로 읽히고, 강청댁의 질투는 독하고 무지막지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불쌍하고 안쓰러워 차라리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용이-월선-강청댁-임이네’로 이어지는 러브라인은 최참판 이야기의 밑바닥을 채워주는 제 2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평산(함안댁)-김평산은 양반이나 인간 말종으로, 최치수를 목졸라 죽인다. 김평산이 살인죄로 처형되자, 손끝 야물고 평소 말이 없는 그의 부인 함안댁은 두 아들을 남겨두고 마당의 나무에 목을 맨다. 거복(김두수)이는 최참판댁에 대한 복수심으로 성장하고, 일본의 앞잡이가 돼 용정에서 끝까지 서희를 궁지로 몰아간다. 동생 한복이는 함안댁을 닮아 비단같은 성품에 성실하기만 하다. 

김훈장네-김훈장은 유교사상이 철저한 양반이지만 사리분별이 분명하여, 평사리 농민들의 ‘정신적 지주’이다. 일본과 관계 등 정세나 시국에 대한 이야기는 늘 김훈장네에서 이뤄진다. 조준구가 최참판댁 재산을 다 차지하고 악행을 거듭하여 농민들이 고방을 털고 봉기를 일으킬 때 농민들과 같이 한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을 접한 김훈장이 울분에 차, 낡은 마룻장을 내려치던 대목이 생생하다.

삼신당-삼신당은 김평산이 망을 보고, 귀녀와 칠성이가 정을 통하던 곳이다. 또 이곳은 자손이 귀한 최참판댁의 여주인들이 아들을 얻기 위해 치성을 들이던 곳이다. (현재 없음)

-“찢어죽이고 말려 죽일 거야.”서희의 한 서린 목소리…파란만장한 최 씨 연대기
[최참판댁]하동군이 소설의 무대를 관광지화하면서 조성한 것이지만, 조선후기 참판댁다운 분위기와 만석지기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참판[參判]은 조선시대 육조(六曹)에 속해 있던 종2품의 관직이다. 1432년(세종 14)에 설치한 각 조(曹)의 차관으로, 판서의 다음 서열이라 하니 아마도 지금의 정부부서의 차관 쯤 될 것 같다. 최참판댁 앞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것이 악양 ‘무딤이들’이다. 형제봉 아래 낮은 언덕배기에 있는 최참판댁은 온 동네와 들판 섬진강을 관할하는 최고 부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내려 보고 있는 듯하다. 천천히 둘러보면 가옥구조나 배치, 구색 등에서 소설 ‘토지’ 속 분위기가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하다. 기본적인 구조는 사랑채, 안채, 별채, 행랑채, 별당 등이다. 

별당-서희의 어머니인 별당아씨가 거처하던 곳으로, 조준구가 집과 재산을 가로채고 난 뒤에는 서희가 거처한다. 팔작지붕의 제법 크고 단아한 한옥. 정원에는 연못과 꽃나무들이 많다. 구천이가 연모하는 ‘신비한 진달래꽃’인 별당아씨의 외로운 일상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하인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던 만큼 ‘별당의 사잇문은 굳게 닫혀 있’고, ‘문짝에 박힌 쇠붙이가 꺼무 꺼무하게 떠보인다’고 했다. 어느 날 밤 별당아씨가 사라진 뒤, 별당의 마당가에서 어머니를 데려오라고 서희가 발악을 하자 윤 씨 부인이 연못 옆의 버들가지를 꺾어 서희의 다리를 내리친다. 울지도 않고 잠시 까무러쳤다 일어난 서희가 지르는 한 마디, “엄마 데려와!”…어린 서희의 내면에 있는 집요함과 자존심, 기상이 엿보이는 사건이었다. 

안채-말수 적고 넉넉하지만 빈틈없는 서희의 할머니, 윤 씨 부인이 기거하던 곳. 두 개의 방 중 하나는 손녀, 어린 서희의 방. 육간대청은 시원하고, 터놓은 대청 뒷면으로 후원이 내다보인다. 윤 씨 부인이 죽고 나서는 조준구의 아내 홍 씨가 거처하며, 온갖 추태와 행패를 부리는 곳이다. 

사랑채-서희의 아버지 최치수가 기거하던 곳. 늘 최치수의 밭은기침소리가 들렸고, 음습한 기운이 어린 곳이다. 서희는 아버지가 기거하는 사랑채에 걸음하는 것을 싫어했다. 더러 문 의원이나 김 훈장, 조준구가 찾아왔다. 나중에 조준구가 사랑채에 기거하는데, 한번은 김 훈장이 찾아온다. 을사보호조약이 이뤄졌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에 찬 김 훈장이 평소 가지고 다니던 담뱃대도 챙기지 않고 방문해, 30여분이나 혼자 앉아 있던 곳이다. 그때 김 훈장은 최치수가 있을 때와는 달리 야단법석을 떨어놓은 방안 모습에 내심 못마땅해 했다. 사랑채 윗 마루에서는 무딤이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채(별채)-사랑채 뒤에 위치해, 채마밭을 사이에 두고 사랑채와 이어진 공간. 윤씨 부인 생존 시에는 조준구네 식구들이 거처하던 곳으로, 조준구가 최참판댁을 차지한 뒤에는 꼽추 아들 병수가 외로이 거처하던 곳. 사람이랄 수 없는 조준구와 부인 홍 씨와는 달리 그들 아들인 병수는 꼽추지만 어질고 지혜로우며, 서희에게 동정과 연모를 느낀다. 병수는 대숲으로 난 길을 따라 집 뒤 사당이 어떻게 돼 있는지 보려고 가다가, 허물어진 담  구멍 사이로 연분홍 치마에 유록빛 회장저고리를 입은 서희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절망한다. ‘내 이 병신만 아니더라면…. 이 세상 끝까지 너를 따라가겠다!…. 너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하리.’라고…. 

행랑채-주로 종이나 머슴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동네 정보와 여론’이 있는 곳이다. 거의 대부분의 평사리 소식은 이곳 행랑에서 시작되어 안채로, 사랑채로 전해진다. 소설 ‘토지’에서는 민중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출생의 비밀과 형수인 별당아씨에 대한 사랑으로 방황하는 구천이, 최참판댁의 충직한 하인들인 김 서방과 수동이와 길상이, 돌이, 삼수, 개똥이 등등…. ‘행랑은 행랑대로 먼곳 가까운 곳에서 모여온 마름과 작인들이 득실득실 판을 치고 있었으며 그들을 위해 큰 가마솥은 쉴새 없이 밥을 삶아내야만 했다.’ ‘행랑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저녁에 처마 그늘이 우물 쪽으로 다가서는 것을 볼 수 있다.’ -토지 내용 중에서.

고방-최참판댁의 만석지기 살림의 규모를 알 수 있는 곳이다. 최참판댁에게는 고방이 ‘신분과 부의 상징’이었지만 조준구에게는 ‘부패와 탐욕’‘늘비하게 이어진 고방에는 끊임없이 볏섬이 들어갔다. 한편 읍내로 곡식을 실어내는 바람에 하인들도 지치지만 근력좋은 마구간의 말과 외양간의 살찐 황소도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토지 내용 중에서. 

도장-별당아씨와 구천이의 소문을 듣고, 윤 씨 부인은 구천은 이곳에 가둔다. 이 사건은 윤 씨 부인과 구천의 관계가 조금씩 밝혀지는 계기가 된다. 굳게 잠겨있던 도장 문을 윤 씨 부인이 열어줘, 구천은 별당아씨와 한밤에 도주한다. 술독이랑 멍석, 사닥다리, 못쓰게 된 연장 따위가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곳으로 ‘일년 내내 응달진 도장의 공기는 냉엄하면서도 습했다’. 

사당-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곳. 조준구는 빼앗은 토지대장을 사당 마룻장 밑에 숨겨두었고, 평사리 사람들이 윤보를 앞장으로 의병이 일으켰을 때에도 부인 홍 씨와 사당 마룻장 밑에 숨어 있다. 그리고 하인 삼수가 이 사실을 알고 마룻장 밑의 조준구에게 한 재산 떼어달라며, 은근히 협박하는 곳이다.

초당-최치수가 은둔하다 귀녀에게 교살당하는 곳. 12월 그믐, 최치수는 길상에게 초당에 묵을 테니 불을 지피라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은 귀녀는 기회를 놓칠세라, 김평산을 부르고 최치수가 잠들었을 때 잠긴 초당 방문을 열어 삼줄로 목을 조른다.

-1000년 거목, 강청댁이 아들하나 점지해달라고 빌던 그 팽나무
[위민정(慰民亭)] 수령이 1000년이 넘었다는 거목이 평사리 상평마을 최참판댁 매표소 오른쪽에 있다. 전국 어디서든 자란다는 팽나무다. 조선 영조 때 부사 전천상이 마을사람들이 모여 쉬는 곳이라 하여 위민정(慰民亭)이라 했다 한다. 전천상은 하동송림도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나무 아래 표지석이 놓여 있다. 어림잡아 높이 약 25m 둘레 4m정도 된다. 마을의 풍요와 다산과 건강을 기원하는 당산나무라 할 수 있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 안쪽에 버티고 선 당산나무처럼 ‘대장군’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환한 달빛 속에 팽나무가 우뚝 나타났다. 강청댁은 돌 하나를 주워 팽나무 둘레에 쌓인 돌무덤 위에 얹고 손을 모아 수없이 절을 한다. “영특하신 목신님네 소원성취 비나이다. 자식 하나 점지하소서.” 소설 ‘토지’ 속에 나오는 대목이다. 남편으로부터 따뜻한 눈길 한번 받지 못한 용이의 아내, 강청댁이 자식을 점지해 달라는 바람은 간절했다. 위민정은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수많은 기원을 안고 오랜 세월동안 역사를 이루고 있다. 

-하동에 온 박경리 눈물을 쏟으며, ‘왜 평사리가 토지의 기둥이었는지 실감한다...’
[무딤이들] 박경리는 소설을 쓰면서 하동 평사리에 온 적이 없다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지도 한 장 들고 한번 찾아와 본 적이 없는 악양면 평사리”였다. 행사 차 이곳에 온 박경리는 ‘눈물을 쏟으며’ “비로소 자신이 왜 평사리에 ‘토지’의 기둥을 세웠는지, 현장에 와서 ‘토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경리가 눈물을 흘린 그곳이 바로, 평사리 ‘무딤이들’이다. 박경리 선생은 2001년 12월 ‘토지’의 서문에 무딤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악양평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넘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 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 그땅 서편인가? 골격이 굵은 지리산 한 자락이 들어와 있었다.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장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이다. 두 곳이 맞물린 형상은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고난의 역정을 밟고 가는 수없는 무리. 이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라면 이상향을 꿈꾸고 지향하며 가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갈망이다. 그리고 진실이다.’


‘토지’ 속에 나타나는 무딤이들에 대한 묘사

1. ‘사람들은 익어가는 들판의 곡식에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들판의 익어가는 곡식은 쓰라린 마음에 못을 박기도 한다. 가난하게 굶주리며 살다간 사람들 때문에...’
무딘이들에 대한 작가의 인식세계가 엿보인다. 무딤이 들에는 평사리 사람들의 삶이, 한 생애의 희노애락이 오롯이 담겨있다. 아니 비단 무딤이들 만이겠는가. 

2. 한가위 뒤
‘한산 세모시 같은 한가위가 지나고 나면 산기슭에서 먼, 먼 지평선까지 텅 비어버린 들판은 놀을 받고 허무하게 누워있을 것이다.’

3. 초겨울 
‘회갈색으로 변한 들판은 허무하고 황량하다. 햇볕은 포근한 편이었고 논바닥에 괸 물은 아직 얼지 않았다. 쭈빗쭈빗한 논둑의 마른 풀이 논물에 그림자를 내리고 있었다. 달콤한 열매 맛을 못 잊은 도둑까마귀가 감나무 꼭대기에 앉아 주둥이를 나뭇가지에 무대고 있었으며 농가 울타리 밖에 쌓인 보리짚단 위에 참새들이 모여안자 햇볕맞이를 하고 있었다.’

4. 악양면 평사리의 이른 봄
‘한창 추웠을 때 강물 가장자리에 두께가 제법 되는 얼음이 얼었는데. 날씨가 풀리면서 깨진 얼음덩이는 햇빛에 희번덕이며 둥둥 떠내려가더니, 그것마저 다 녹아버리고 강물을 물거품을 몰고 와서 강변 모래밭에 찰싹대고 있었다. 끝이 누우렇게 옹그라붙은 보리와 붉은 흙이랑에 봄서리가 내리고, 논바닥에는 거름과 부토더미가 군데군데 놓여져 있었다. 개다리 같이 앙상하게 구부러진 뽕나무를 보아서는 아직 봄이 먼 것 같지만 그러나 최참판댁 별당과 사랑 뜰에는 옥매화가 방금 열릴 것 같이 봉오리를 물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까맣게 그을려놓은 강둑 잔디에, 우뚝우뚝 서있는 키 큰 버드나무에 푸른 새 잎이 돋을 것이다.’ 글/ 하동군.한국국제대학교 정리/하동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