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경고문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경고문
  • 하동뉴스
  • 승인 2023.08.2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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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문

                                   사윤수

지나친 그리움은 금물입니다

그리움 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그리움이 눈 똥은 주인이 치우시기 바랍니다

그리움에게 먹이를 던져주지 마시오

그리움에게 3m 이상 접근 금지

그리움은 수심이 매우 깊으니 들어가서 헤엄치지 마시오

구명복은 좌석 밑에 없습니다

그리움을 우회하시오


-시집 『그리고, 라는 저녁 무렵』(시인동네, 2019)


사윤수 /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음.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파온』 『그리고, 라는저녁 무렵』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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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이야기겠지만, 우리가 사는 힘은 그리움에서 비롯됩니다. 오늘을 버티는 힘도 내일을 기다리는 힘도 그리움 때문이고, 문학도 예술도 그리움에서 비롯되지요. 이 세상에 그리움이 없다면 빙하기 뒤의 지구처럼 무엇이 살아남을까요? 그러므로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지요. 이 땅의 신이옵신 그리움이여!
하지만 그리움처럼 무서운 것도 없지요. 내 일상의 모든 것을 거두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흡연은 위험합니다. 지뢰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개가 눈 똥은 주인이 치우시기 바랍니다. 호랑이에게 먹이를 던져주지 마시오. 사자 우리에서 3m 이상 접근 금지 등등 온갖  ‘경고’의 자리에 ‘그리움’을 놓아서 그 위험성을 고지합니다. 그리움에 함몰되면 빠져나오기가 힘드니 ‘우회’해서 피해가야 한다고 일러줍니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은 다 위험합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를 매혹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강력한 금기는 강력한 위반의 욕망을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밧줄 없는 번지점프처럼 구명복 없는 그리움이야말로 강력한 신이 되어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리움을 너무 우회하지 마시길.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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