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벚꽃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벚꽃
  • 하동뉴스
  • 승인 2024.04.0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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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이미화

봄밤이 알을 품고 있다
벚나무 속의 저 노란 가로등 한 알, 수천수만 송이 꽃을 깨워놓고
또 알을 품고 있다

봄밤이 품고 있는 저 은근한
불빛
아래에서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입술을 나누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어설프고 겸연쩍다
저 광경들,
나는 솜사탕 들고 뻥튀기 과자 들고 멍하니 구경만 한다

-시집 『그림자를 옮기는 시간』(푸른사상, 2023)

?【시인 소개】
이미화 / 삼천포에서 태어남. 201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치통의 아침』, 『그림자를 옮기는 시간』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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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는 철입니다. 벚꽃은 우리나라 방방곡곡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랑받는 꽃입니다. 하지만 한때는 벚꽃을 ‘사쿠라’라고 부르며 ‘일본의 국화(國花)’라고 오해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이 벚꽃을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일본의 ‘공식적인’ 국화(國花)는 아니라고 합니다.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꽃은 국화(菊花)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벚나무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니라 제주도입니다.
이 시는 노란 달걀 같은 가로등이 어미닭처럼 따뜻한 빛으로 “수천수만 송이” 벚꽃을 품고 있는 봄밤의 풍경에서 시작합니다. 봄기운으로 새로운 생명이 부화되어 나올 것 같은 설렘이 느껴지는 밤입니다. 벚꽃이 핀 가로등 아래에서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입술을 나누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며 봄밤을 즐기고 있습니다. 봄밤은 분출되는 에너지로 인해서 역동적입니다. 그래서 벚꽃 피는 봄밤은 낭만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위태롭습니다.
이런 탓에 봄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왠지 “어설프고 겸연쩍”어서 “솜사탕 들고 뻥튀기 과자 들고 멍하니 구경만”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심지어 일상이 고통스러워서 봄밤이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 시인 T.S.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황무지」)이라고 노래했지요. 올 4월은 22대 총선이 있어서 이 시구가 사무치는 사람들이 많겠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세상사 무상함을 이 봄날에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김남호 / 문학평론가, 박경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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