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소영 행복버스 안내도우미
[인터뷰]박소영 행복버스 안내도우미
  • 하동뉴스
  • 승인 2018.10.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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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안내도우미에게 버스는 “인연‘이라고 밝혀
박소영 행복버스안내도우미
박소영 행복버스안내도우미

하동군 내를 운행하던 시외버스에는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추억의 ‘버스 안내양’이 있었다. 예전처럼 아가씨가 아니라 중년의 주부이긴 하지만 그래도 노인들은 이들을 ‘안내양’이라고 부른다. 정식 명칭은 버스 안내도우미다. 박소영(44) 안내도우미는 읍면지역을 운행하는 행복버스에서 근무한다. 이 버스는 주로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농어촌지역이 주요 노선이다. 움직임이 불편한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버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돕는다. 그는 올 2월 행복버스 안내도우미로 발탁되어 현재까지 8개월 째 꾸준히 근무하고 있는 탈북출신이다. 본지는 직접 박 안내도우미를 사무실로 초대,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첫 대면에도 불구하고 밝은 웃음을 지으며 아직까지도 북한 언어에 익숙한 지 북한 억양이 많이 깃든 첫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탈북민 출신 버스 안내도우미가 맞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버스 안내도우미 유니폼이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빨간색 유니폼에 신분증까지 목에 내걸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행동엔 사람을 배려하고 섬기는 자세가 몸에 익숙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나 활짝 웃으며 일을 한다는 박 안내도우미에게는 버스 탑승 후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운행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자신에게 버스는 ‘인연’이라고 밝히면서 그 이유를 묻자 “북한에서 9년 동안 버스 안내양을 했었다”며 “그러나 한국에서 안내양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다행히도 버스 안내도우미가 있었다. 버스로 인해 하늘에서도 자신에게 인연을 맺어 준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 속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가족으로는 남편과 함께 오순도순 살고 있다.

-다음은  버스 안내도우미 박소영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출생지는 어디인가? =북한 회령이다.

▲기족관계는 =부모님과 7형제 중 막내다.

▲북한의 버스는 승객이 타는 출입구와 운전기사가 이용하는 문이 따로 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사실이다.

▲왜 이렇게 되어 있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북한에서 운행 중인 버스는 옛날 버스다. 그러다보니 기사 옆에 엔진이 놓여 있어 손님들이 탑승을 하지 못한다. 운전기사만이 탑승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도 버스차표 안내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맞나 =맞다.

▲북한에서의 버스 안내원을 하게 된 동기(계기)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버스를 타고 다녔다. 버스 안내원을 바로 보고 있을 때마다 편안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도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다행히 사장(지인)을 알고 있어 안내원에 채용이 되었다.

▲그럼 언제부터 언제까지 안내원 일을 했나 =1990년부터 1999년까지 9년 동안 일했다.

▲북한에선 버스 안내원 채용은 어떻게 하나 =특별하게 채용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버스 안내원은 사장이 직접 면접을 본다. 가끔은 시험도 치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장과의 친분이 있어야 취업이 가능하다고 그(박소영 안내도우미)는 말했다.

▲1일 몇 시간 근무했는지. =1일 몇 시간 근무라고는 없다. 주 3회(화. 목.토) 근무한다.

▲1일 운행거리는 =150㎞정도다.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다(비포장 길이기 때문이다)

▲버스 요금체계는 어떻게 책정하고 있나? =거리마다 다르다. 구간제 요금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원거리는 4원 20전을 받는다. 반면 가장 근거리는 1원 30전에서 1원 90전을 받았다. 사실상 버스 요금은 ㎞당 1원이 책정된다고 보면 이해가 싶다.

▲언제 한국으로 왔나 =2011년이다.

▲누구와 함께 왔나 =언니들과 함께 왔다.

▲그리고 하동으로 오게 된 동기(계기)를 이야기 해 달라 =지금의 남편(북천 출신)을 만나면서 시집을 오게 됐다.

▲하동버스 안내원은 언제 채용됐나. =올 2월이다.

▲운행 지역은 어디서 어디인가? =군내 일원이다. 옥종이나 청학동, 약수장, 동점, 진교 등이다.

▲1일 근무시간은 =8시간 근무하고 있다.

▲승객들이 자신에게 대하는 반응은 =‘예삐야’로 통한다. 늘 고객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랑을 보내주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지금까지 버스 안내원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적은 언제였나. =마음껏 어르신들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를 때가 아닌 가 생각한다. 모든 어르신들은 지금 작고하신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면서 늘 부모님같이 대하고 있다.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북한에서의 버스 안내원과 하동에서의 안내원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북한은 권력이고 한국은 봉사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승객들 이것만은 고쳤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류장이 아닌 곳에 정차를 원할 때 가장 난감하다.

▲버스 안내원 힘들지 않나 =힘들지 않다. 너무 재밋다.

▲비번(쉬는 날)에는 어떤 일들을 하나 =그동안 못한 집안일들을 하고 있다.

▲버스 안내원 이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 =서울에서 핸드폰 조립업무에 종사했었다.

▲현재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달라 =하동은 관광지가 너무 많다. 그래서 하동 알리기를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 예를 들어 관광해설사 등이다.

▲자신의 꿈은 무엇인가 =지금보다 좀 더 잘사는 게 꿈이라며 단순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게 있나 =가까운 요양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면 =손님들로부터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누구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제철 과일을 보내주는가 하면 일부 손님들은 고생을 한다며 현금도 주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많은 분들이 ‘잘 살라’고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고 박 안내도우미는 말했다. 강정배 기자 kjb345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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