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 소리]거림골의 중학생
[노년의 고동 소리]거림골의 중학생
  • 하동뉴스
  • 승인 2019.07.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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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야기는 내가 공무원으로 재직 중일 때, 지리산 공비 생활을 겪었다는 동료 공무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나는 그에게 지리산에서 남부군 총수 이현상(李鉉相)을 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현상을 먼발치에서 봤던 일을 말해 주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1951년 지리산 기슭 깊숙한 골짜기 산청 거림골에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 누렇게 익은 벼가 황금 빛으로 물든 좁은 들판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는 듯했다. 여느 때 같으면 평화스런 산골이었지만, 전쟁 중의 지리산 골짜기는 설쳐대는 공비들 때문에 마을은 을씨년스러웠고 가끔 골짝을 울리는 까마귀 우는 소리가 적막을 깰 뿐이었다.

서산으로 기우는 해가 볕을 만들어 준 따스한 양지쪽 비탈에, 한 떼의 빨찌산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무리를 벗어나고자 부대를 이탈, 개울을 따라 빠져 나가던 한 소년 빨찌산이 초병 빨찌산에게 걸려 붙잡혀 되돌아 왔다. 빨찌산들은 이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지를 두고 재판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른바 인민재판을 본 딴 것이었다. 무리 가운데 두목인 듯 빨찌산이 적막을 깼다.

“이 동무가 도망 가다가 잡혀 왔다! 어떻게 처리 할것인가 여러 동무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오!”. 그러자 도망가려 했던 소년이 입을 열어 살려 달라고 하소연 했다. “저는 집에 몸이 아파 누운 어머니를 한번 뵙고 오려고 나가다가 되돌아 왔습니다! 한번만 살려 주십시오. 꼭 되돌아오려 했오!”

소년은 부들부들 떨면서 절망적인 목소리로 애원하였다. 순간 모두들 말이 없는 가운데, 한 빨찌산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예! 제가 저 동무와 친군데 저 동무 어머니가 오래 전부터 병이 들어 누워 있었습니다.! 한번만 살려 주십시요!”. 그 소년은 한 동네 친구였다. 그러자 좌중에서 앙칼진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마치 악마들의 외침 같았다.
“안 돼! 저 동무들은 사상이 불순하다! 저런 동무들은 우리의 혁명정신을 좀먹는 거추장스런 존재들이다. 처치해 버려야 합니다!”.

그 때 좌중의 한 중년 빨찌산이 근엄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인민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우리의 강건한 혁명 대열에 저런 나약한 존재는 없어야한다. 우리의 혁명 성공을 위해 도망치던 동무와 그 친구도 함께 죽여야 합니다! 여러분!”. 억세고 힘이 배인 우렁찬 말투는 분위기를 제압고도 남음이 있었다. 순간 여기저기서 “옳소!” “옳소!” 하는 외침이 골짝을 울렸다. 이리하여 도망치던 소년과 변명을 해 주던 친구까지 두 소년은, 눈을 가린 채 나무 둥치에 묶여 섰다.

총탄을 아껴야 했고, 골짜기를 울릴 총소리는 작전상 위험 했다. 죽여야 할 소년 하나 앞에 빨찌산 두 명씩이 달려들어 총검술로 소년들 심장을 찌르고 배를 갈랐다. 그들은 “엄마~아!”하는 비명소리만 남긴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들의 처참한 비명 소리는 오랫동안 골짜기를 울리는 것 같았다. 이 두 소년은 옥종 중학교 학생들이었다. 빨찌산들이 내려와 소위 보급투쟁으로 식량을 탈취해 갈 때 붙잡혀 식량을 날라주고 함께 끌려 다니던 10대 초반의 소년들이었다.

그 아이들은 누구의 아들이었을까?. ‘공산주의?’ 기가 막히는 사상이고 이론이다. 살상이 끝나자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던 한 풍채 좋은 사내가 끝맺음을 했다. 그는 갸름한 여성 빨찌산 하나를 옆에 두고 앉아있었다. “양지쪽에 잘 묻어 주어라!”. 무겁게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는데, 서산에 해는 기울고 검은 산그늘이 사내의 처량해 보이는 등을 덮고 있었다. 하동읍을 급습했던 지리산 남부군 총수 이현상이었다. 사)대한노인회 하동군 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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