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군수님 전 상서
[특별기고]군수님 전 상서
  • 하동뉴스
  • 승인 2019.07.2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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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윤상기 군수님께!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의 해를 맞아 우리 하동에서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했던 하동3·1운동지도자, 하동‘대한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박치화(朴致和·1880~1947·적량면 동산리· 前 적량면장) 선생의 숭고한 뜻이 후세에 전해지기를 소망하며 군수님께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군수님께서는 우리지역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 지난해부터 경남독립운동연구소에 모든 행정적 뒷받침을 해주셨습니다. 특히 민간인은 접근할 수 없는 읍?면사무소의 문서고 문을 활짝 열어 100년 전 문서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1927년 제2의 하동 3·1운동을 주도한 강대용·여국엽·여태원 선생, 1930년대 국내?외에서 활약한 김계영 4남매, 조정래 3남매, 여성독립운동가 제영순 부부, 김계정 부부, 조복금, 조복애 선생 등이 세상과 조우했습니다. 그리고 70여명의 독립운동가를 새로 찾아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습니다.

또한 하동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양보면 출신 이병홍 선생의 묘소를 순국 100년 만에 발굴하고 군수님께서 몸소 추념제를 올리고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는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민족혼을 되살리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처럼 군수님의 적극적이고 큰 배려가 없었다면 우리지역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음지에 묻혀 있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일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1운동 100년 만에 하동지역 독립운동가들이 비로소 양지로 나와 다시 태어나고 국가로부터 온당한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저의 힘으로 감당하기에 힘든 일이라 군수님과 50만 내외 군민께 감히 청을 올립니다. 하동3·1운동 최고지도자 박치화 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하동독립선언서’가 발견된 적량면 동산리 생가(고가)의 보존이 시급합니다. 현재 선생의 생가는 사람은 살지 않고 관리 소홀로 폐가에 가깝습니다.

수년전 하동군 노인회 정연가 회장님의 부탁으로 박치화 선생의 손녀(박숙희·양보면 거주)를 만나 생가 보존에 대해 수차례 논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일을 추진하지 못했습니다. 하동3·1운동의 성지와 다름없는 선생의 생가가 훼손되어 가는 것을 그대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100년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선생의 숨결이 살아있는 그 역사의 현장, 12인 독립지사의 선언서가 묻혀있었던 적량면 동산리 마을에 그의 공훈비를 세우고, 군민의 손으로 생가를 보존하고 기념관으로 만든다면 이는 하동3·1운동의 품격을 드높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군수님께서 역사의 한 장을 열어주실 것을 간곡히 청합니다. 선생이 기초한 하동독립선언서는 지방자체의 유일한 독립선언서로 하동군민의 자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언서는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15년 국가기록물 제12호로 등록되었습니다. 이 선언서에 서명한 12인은 일제에 체포되어 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인근 광양시와 남해군 등지에도 독립운동 영향을 미쳤다는 기록들이 경남독립운동연구소에 의해 최근 발굴 됐습니다. 이와 관련한 자료로 전남 광양출신 임태일(1899~1959?진월면) 선생 판결문이 있습니다. 내용 중에는 “임태일은 1919년 4월 14일 그가 거주하는 진월면 송금리 한문서당에서 여러 학생들에게 하동군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을 견학하기 위해 함께 가야한다. 하동군에서는 조선독립만세를 크게 외침에도 불구하고 우리 광양군 내에서는 만세 부르는 자가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하동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정낙영, 이범호, 정희근, 선생은 1919년 3월 20일 남해군 남해읍 장날에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하동독립선언서’를 다량 등사하는 등 시위준비를 갖춘 후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시위를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정낙영 이범호 정희근 선생의 당시 재판기록에 담겨있습니다.

이는 박치화 선생이 기초한 ‘하동독립선언서’가 인근 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당시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이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우 받아야 마땅합니다. 박치화 선생의 생가보존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인의 독립운동가를 함께 예우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박치화 선생의 고가를 잘 보존하고 성지화해 하동인의 긍지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윤상기 군수님! 독립운동가들이 흘렸을 한없고 뜨거운 눈물을 이제는 따뜻한 관심으로 보살펴 주십시오. 그들을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위인들이기에… 군수님의 혜량 있으시길 앙망합니다.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정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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