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일 칼럼]아버지라는 이름
[박영일 칼럼]아버지라는 이름
  • 하동뉴스
  • 승인 2019.09.10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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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의회 7·8대의원
(교육사회위원장)  박 영 일
 
  사람은 세상살이 잘 모르고 책임 없는 위치에 있을 때 마음 편하고 행복하며 무섭고 두려운 게 없다. 학자든 공무원이든 군인이든 연예인이든 농부든 자기의 위치에서 세월이 흐르고 경륜이 쌓이고 알면 알수록 조심스럽고 두려우며 무거움을 느낀다.

 ‘아버지’또한 세상에서 가장 책임 있고 무거운 이름이고 불가능 없는 ‘신’같고 ‘슈퍼맨’같은 존재였다. 아버지의 빈자리 소중함 무게의 나눔을 깨닫고 ‘효도’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을 때 너무 세월이 흐른 후였다. 지나버린 시간 속에 풋풋했던 젊음은 가고 굵게 패인 주름살에 초라해진 아버지 모습! 아~ 그게 한없는 가족 사랑의 흔적 이었구나. 자신이 미워지고 서글픔과 후회가 함께한다. 사계절이 수없이 바뀐 후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한 겹, 두 겹 세월이 무거운 갑옷처럼 되어 버렸고 ‘아버지’라는 이름의 책임감에 언제나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프고 슬프고 고달프고 외로워도 가족 앞에서는 나약한 모습과 눈물을 보일 수 없는 이름이 ‘아버지’이다. 자녀들 학교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해 엄마는 야단이고 아들딸은 기죽어 있어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지만 ‘괜찮아’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사랑하는 자녀들의 귀가가 늦을 때 엄마는 불안해서 현관문을 수없이 들락거린다. 아버지는 강한 척 태연하게 엄마를 다독거리고 TV를 보며 무거운 자리를 지킨다. 그러나 엄마 몰래 벽시계를 수없이 훔쳐보고 현관문에 온통 정신을 집중하는 사람이 아버지이다. 휴대폰 벨이 울리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사람이 아버지이다.

 내 아버지 내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고 그랬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풍요롭지 못해도 행복했고 사람 냄새가 나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각박하고 위험하고 언제나 긴장해야 하고 남들과 경쟁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자주자주 아침을 거르고 출근하는 아버지들! 직장생활이 즐거워서 보다. 아버지라는 이름을 피할 수 없어 이리 채이고 저리채이고 수모를 겪고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겹 쌓여도 하소연 할 사람 쉴곳 울곳 없는 슬픈 사람이 아버지이다. 자녀들이 올바르게 자라길 고대하며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뒷바라지 제대로 못해줌에 가슴으로 눈물 흘린다.

 과연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였는가? 수없는 생각과 한숨 속에 밤을 지새우는 때가 수없이 많다. 언제나 마을 뒷산 큰 바위 같고 동구 밖 느티나무 같은 존재지만 아버지도 사람이라 옛 친구를 만나면 천진난만한 소년시절로 되돌아간다. 이 세상 엄마 아들딸들이여? 아버지는 비록 그대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하루에 수십 번 사랑한다는 말을 되새긴다는 것을 기억해주고 무거운 짐을 나누면 안 될까? 강해 보이지만 아버지도 영원하지 않고 언제나 청춘이 아니다. 저 멀리 떠난 후 후회한들 무엇 하겠나? 두고두고 후회하며 가슴 아파하는 사람으로 기억하지 않게 무거운 발걸음에 숨겨진 사연을 헤아려 주면 안 될까?

 근엄해 보이고 강해보이지만 마음은 여리고 작은 정에 감동하며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체면도 자존심도 심지어 목숨까지 기꺼이 버리는 수많은 남성들이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 무거운 이름 때문에 영원히 마음의 상처를 치유 하지 못하는 수많은 아버지를 따뜻한 말로 위로해주면 어떠할까? 가정과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는 희미해지고 힘없는 아버지로 살아가는 이세상의 남성들! 그래도 아버지라는 이름 때문에 오늘을 극복하고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몸에 해롭다는 담배 한모금과 진한 믹스커피 한잔으로 하루의 고달픔을 위로하는 우리 아버지들에게 사랑담긴 박수를 보내면 안 될까? 올여름 따가운 햇살을 말없이 맞으면서 하루 종일 고된 일로 땀이 범벅된 빛바랜 작업복 쉰 냄새의 진정한 의미를 그대들은 아는가?

 값비싼 ‘아메리카노’보다 정이 담긴 ‘믹스커피’를 마시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그대들이 되었으면 한다. 태평양 연안에 ‘천축잉어’라는 바다고기가 있다. 어미고기가 알을 낳으면 아버지 고기는 입에 넣고 부화를 시킨다. 그동안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서 쇠약해지고 급기야 부화 시점에서 굶어서 생을 마감한다. 죽음이 두려우면 ‘알’을 뱉으면 그만인걸. 죽음을 뛰어 넘는 그 거룩한 사랑을 택한다. ‘천축잉어’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이 왜? 이렇게 가슴에 와 닿을까?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사람일까? 이 세상 아버지들의 물음이다 삶의 한켠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믹스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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