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발꾸미와 광개토대왕
[노년의 고동소리]발꾸미와 광개토대왕
  • 하동뉴스
  • 승인 2019.09.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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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심심하면 내 뱉는 ‘독도 일본 땅’ 소리는 참으로 가증스럽다. 나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때 마다 옛날 4세기경 고구려왕으로 일본을 정벌했던 광개토대왕의 치적이 머리에 떠오른다. 우리 고장 하동 남해안에 ‘발꾸미’라는 아주 작은 어촌이 있다. 나는 옛날 초등학생 때 그곳에서 그 시절의 발동선을 타고 한산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일로 발꾸미를 알게 되었다. 훨씬 뒤에 들은 전설이 흥미롭다. 바닷물이 출렁이는 발꾸미 해면 암반에는 커다란 말발굽 같은 발자국이 많았다. 그 자국은 옛날 어떤 장군이 타고 왔던 말의 발자국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발굽 자국은 사실은 공룡의 발자국이었고, 설화로 전해 오는 장군은 이곳에서 일본 정벌 출정 길에 올랐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을 말함이었다. 우리가 무심코 들먹이는 ‘발꾸미’에는 결코 지워서는 안 될 역사적 진실이 자랑스러운 의미와 함께 서려 있다. ‘발꾸미’는 고구려 군사가 일본을 향해 출발했던 땅 끝이라는 의미의 발군미(發軍尾)의 변음이라 했다. 어떤 이는 ‘발굽이’이라고도 했다. 서기 393년 대가야의 제9대 왕 이뇌왕(異腦王)은 동맹국인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밀사를 보내 강성한 군사로 대가야국을 괴롭히는 왜국을 소탕해 줄 것을 청했다. 광개토대왕은 차제에 적대 관계인 백제를 돕는 왜국을 정벌, 왜국을 고구려의 속국으로 삼고자 결심하였다. 대왕은 우선 왜국 정벌에 장애가 될 백제부터 제압해야 했다.
 
394년부터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치기 시작, 이태만에 마침내 백제 아신 왕으로부터 영원한 노객(奴客)이 되겠다는 항복을 받아 냈다. 광개토대왕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수군 1·2진을 동·서해 양 방면을 통해 대가야 쪽으로 내려 보내고, 제3진은 원주·김천·운봉·구례를 거쳐, 화개에서 섬진강을 타고 오늘날의 발꾸미로 내려와 진지를 구축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진교면 양포리에 일본 정벌의 전초 기지를 구축하였다. 앞서 대가야국은 발꾸미에 조선소를 만들고 지리산의 큰 나무들을 베어 뗏목으로 섬진강을 따라 발꾸미까지 운반, 왜국 정벌에 쓸 전함을 대대적으로 만들었었다. 이때 발꾸미는 수많은 함선들과 뗏목으로 불야성을 이루니, 병사들은 이 해역을 부해(浮海), 즉 뗏목의 바다라고 일컬었다고 전한다.

왜구정벌에 나선 고구려 군사들은 통일된 조직력이 없었던 일본 열도를 쉽게 제압하였다. 곧이어 광개토대왕은 대전·함양·산청을 거쳐, 발꾸미에 다 달아 200여척의 함선에 고구려·가야 연합군 병사 5000여명을 거느리고 기지를 출발, 일본 후꾸오카에 상륙하여 군사들을 지휘, 왜구의 기세를 제압하고 귀국하였다. 그러나 저들의 게릴라 항전에 정벌군은 물러났고, 광개토대왕도 서기 412년 39세 나이로 숨졌다. 강성한 통치자 광개토대왕을 잃은 고구려가 왜구의 뿌리를 뽑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 일본이 ‘독도’를 들먹이면 ‘발꾸미’가 떠오르는 게 버릇이 되었다. ㈔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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