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기막힌 지난 일들
[노년의 고동소리]기막힌 지난 일들
  • 하동뉴스
  • 승인 2019.10.22 07: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중종 38년(1543) 폴랜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세상을 떴다. 그는 사람들이 ‘하늘이 움직인다’고 믿은 천동설(天動說)을 뒤엎고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과학자였다. 그의 학설을 오랫동안 외면당했다가 그가 세상을 등지던 그 해에 비로소 공인 받았다. 그리하여 서구 국가들은 해양으로 진출, 지구상의 땅덩어리들을 찾아 나섰다. 같은 해 8월, 태평양에 떠돌던 포르투칼 상선이 일본 종자도(種子島)에 표류해 왔다. 포르투칼 상인들은 철포와 화약을 갖고 있었다. 일본은 큰 댓가를 치르고 철포를 샀다. 일본인들은 철포를 개량, 가벼운 조총을 만들었다.  같은 해 조선에서는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순흥(順興)에 중국 주자(朱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본 딴 백운동 서원을 세웠다. 일명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었다. 조선은 양반사회였다. 서원은 양반 자제들이 글 읽는 시설이었다. 읽는 글이라곤 과학적 실질과는 거리가 먼 성리학 파고 들기였다. 이를 테면 충과 효가 인생의 전부라는 사고를 뼈골에 심어주는 학당에 불과 했다. 그러니 서원은 산업 생산 주역인 평민들을 착복의 도구로 삼는 양반 나부랑이들의 소굴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죽 했으면 대원군이 서원을 깨 부셔 버렸을까.

 서원이 설립된 지 49년 뒤인 임진년(1592), 왜란이 터졌다. 조총으로 무장한 왜적들은 그냥 걸어오듯 15일 만에 서울을 차지했다. 임금 선조는 여차하면 중국으로 넘어가려 의주까지 달아났다. 성리학에만 매달렸던 양반들은 정신을 잃었고 나라는 초토화 됐다. 거리에는 주검이 가득했고 사람고기를 먹는 백성들도 드물지 않았다. 어느 대신이 ‘사람고기 먹은 자를 왜 처벌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니, 관련 대신은 ‘먹을게 없어 그런 것을 내가 어쩌란 말이냐?’고 대들었다. 임금은 할 말을 잊고 눈만 꾸벅 거렸다. 구한 말, 그 무렵 서구 유럽의 스위스는 알프스 산에 산악열차를 개설, 급한 비탈을 타고 열차가 산봉우리까지 올라가게 했다. 그 무렵 극동의 우리 조선에서는 요즘의 국무총리격인 영의정 김홍집(金弘集)이 머리 상투를 깍으라는 단발령을 내렸다가 흥분한 백성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해 광화문 거리에서 짓밟혀 저승 식구가 되고 말았다. 문명국들과는 너무 거리가 먼 조선의 실상이었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어느 여행 작가가 조선에 들어왔다. 산천 구경을 즐기던 작가가 황해도에 들렸다. 그는 도지사격인 관찰사와 대화를 나눴다. 관찰사가 ‘어디서 왔느냐?’ 물었다. 영국인은 영국에서 왔다. 영국이 어디 있는 나라냐? 이곳 반대편에 있다. 관찰사는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그러면 거기 가람들은 머리를 땅에 대고 다니느냐? 참으로 기가 막혔다. 관찰사는 아직도 지구를 평평한 땅덩어리로 알고 있었다. 그 영국인은 또 영남 쪽 어느 마을에 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총 동원되어 마을 앞에 도랑을 파고 있었다. 영국인이 의아하여 지도급 인물인 듯싶은 양반에게 도랑을 파는 이유를 물었다. 양반은 뭘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라도 한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배를 움켜쥐고 웃을 말인 즉 “저 아랫마을에 전염병이 들어왔다. 그걸 우리 동네에 못 들어오게 막으려 물도랑을 치고 있다”고 말 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이집트 카이로에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 중국의 장개석 총통 세 거두가 모여 전후 세계문제를 논의 했다. 한국의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간절한 부탁을 받은 장개석이 한국의 독립 문제를 거론하였다. 루즈벨트와 처칠의 반응은 극히 미온 적이었다. 한반도는 일본과 한국의 ‘합방(合邦) 조약’에 따라 한 나라가 돼버렸으니 독립시켜 줘야할「식민 국가」와는 성격이 틀린다는 것이었다. 처칠은 한 술 더 떠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은 쓰레기통에 장미꽃 피기보다 어렵다” 했다. 한국인들의 처절한 독립운동을 유심히 지켜본 장개석은 포기하지 않고 루즈벨트와 처칠에게 매달렸다. 루즈벨트가 마지못해 ‘적당한 시기를 봐서’라며 약간 희망을 주었다. 그러자 처칠은 ‘적당한 시기에 절차를 밟아서’라며 조건 하나를 더 달아 까탈을 부렸다. 역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지난 일들을 곱씹어 보자. 사)대한노인회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