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자동차에 치인 눈사람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자동차에 치인 눈사람
  • 하동뉴스
  • 승인 2020.02.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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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치인 눈사람

                                                        최승호

자동차는 말썽이다 왜 하필 눈사람을 치고 달아나는가
아이는 운다
눈사람은 죽은 게 아니고 몸이 쪼개졌을 뿐인데
교통사고를 낸 뺑소니차를 원망하는 것이리라

“눈사람은 죽지 않는단다, 꼬마야
눈사람은 절대 죽지 않아”
아이는 빤히 나를 쳐다본다

“아저씨, 눈사람은 죽었어요
죽지 않는다고 말하니까
이렇게 죽었잖아요”?

-시집 『눈사람 자살 사건』(달아실, 2019)

【시인 소개】
최승호 / 1954년 강원 춘천에서 태어남.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1980년대 초 그의 시 「대설주의보」는 천지를 하얗게 뒤덮으며 몰려오는 눈보라를 ‘백색계엄령’이라고 표현하여 군부독재시대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강렬하게 환기시켜 주목을 받음. 『대설주의보』 외 다수의 시집이 있음.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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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가 예사롭게 읽히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눈사람이 뺑소니차에 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가 보이는 모순된 반응입니다. ‘눈사람’에 대한 인식은 어른과 아이가 상반됩니다. 어른은 그저 아이들의 겨울철 놀잇감으로 눈사람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눈사람을 치고도 그것을 교통사고라고 생각하는 어른은 없습니다. 그 점에서는 시인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눈사람은 죽은 게 아니라 쪼개졌을 뿐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눈사람을 가족이나 친구로 생각하는 아이는 이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바로 어른들의 그런 편견 때문에 눈사람은 죽었다고 여깁니다. 아이는 그 눈사람의 유일한 유족입니다. 유족에게 필요한 것은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이지 변명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없고, 주위에서는 눈사람은 죽은 게 아니라고 되레 아이를 설득하려 듭니다.
그동안 우리는 ‘세월호’를 비롯한 무수한 사고에서 이런 기막힌 상황을 봤습니다. 그런 탓에 이 시가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세상’의 슬픈 알레고리(비유)로 읽히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언제부턴가 겨울이 돼도 눈이 없습니다. 당연히 눈사람도 없습니다. 알레고리조차 없는 현실은 더 삭막합니다.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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