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동군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연재] 하동군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 하동뉴스
  • 승인 2021.03.2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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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혜능의 머리뼈를 뼈를 묻은 옥천사, 쌍계사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다

[쌍계사 창건]-쌍계사는 성덕왕 21년(722년)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스님이 당나라에서 육조혜능의 머리뼈를 가져와 봉안하면서 옥천사를 창건한 것이 쌍계사의 전신이다. 삼법스님의 꿈에 육조혜능이 ‘강주(진주)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계시에 따라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에 절을 세웠다. 이후 문성왕 2년(840년) 혜소 진감(眞鑑)선사가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했다. 최치원이 쓴 쌍계사 진감국사대공탑비(국보47호)에는 ‘삼법화상의 옛 터전을 그대로 잡아 당우를 수리하니 엄연히 절의 모습을 갖췄다’고 기록돼, 없어진 절이 아닌 중창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진감선사는 선의 가르침과 불교음악인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했다. 진감선사는 대렴이 화개에 차를 심은 뒤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한 스님이기도 하다. 886년께 정강왕이 ‘한 고을에 같은 이름의 두 절(옥천사)이 있어 혼돈스러울까 염려 된다’며, ‘쌍계’란 호를 내리면서 이름을 바꿨다. 쌍계란 두 개의 시내가 흐른다는 뜻이다. 국보 1점(진감국사대공탑비-국보47호)이 있고, 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등 3점의 보물이 있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이 있고, 딸린 절로 국사암 등의 암자가 있다.

▣육조혜능의 목은 잘려 화개로 온 건가 중국에 그대로 있나. 한-중 주장은 팽팽하고
[혜능의 잘린 머리 논란]-신라 대비스님이 육조혜능의 머리를 가져가기 위해 사람을 시켰다는 것까지는 중국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중국의 기록은 이렇다. 혜능대사는 ‘자신이 죽으면 머리를 떼어가려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놀란 제자들은 등신불이 된 육조혜능의 목에 방울을 걸어두었다 했다. 아니나 다를까 육조혜능의 목을 떼려다가 발각된 사람이 있었고, 이 사람을 취조하자 신라사람 김대비란 사람이 시킨 것을 자백해 관에 압송했다. 그러나 ‘혜능의 법력으로 신라에 불법을 전하려는 가상한 뜻’이라 하여 무죄 방면했다. 중국 조계산 남화선사에는 등신불이 된 혜능의 진신이  아직도 있다. 삼법이 목을 뗐는데 옻칠을 한 등신불에는 혜능의 머리가 그대로다. 어떻게 된 걸까. 이를 ‘진짜’라고도 하고, ‘아니다’고도 한다. 삼법이 혜능의 머리를 가져왔다는 것은 낭설이라고도 한다. 신라인의 ‘머리 떼어가기 프로젝트’는 실패라는 것이었다. 쌍계사 성보박물관에도 육조혜능의 등신불 사진이 걸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육조단경’의 유통부촉 편(입적에 앞서 제자들에게 부탁함)에는 ‘내가 멸한 뒤 5~6년이 되면 마땅히 한 사람이 와서 내 머리를 가져가리니 내 예언을 들어두라’며, ‘머리위로 어버이를 공양하고/ 입속에 밥을 구하네/ 만의 난을 만날 때/ 양유가 관이 되리라’는 시다. 삼법스님은 육조단경의 예언을 읽고 머리를 떼어올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알았다’고 한다. 이 시에서 ‘만’은 장정만이란 사람을 뜻하고, 양유가 관이 된다는 뜻은 범행당시 현령이 양간이고, 자사가 유무첨이 된다는 것을 알린 것이라 한다. 자신의 머리와 함께 불법이 신라로 갈 것을 예언한 것이지, 막으려 한 게 아니란 뜻으로 풀기도 한다. 그래서 현재 중국의 남송선사에 있는 등신불은 가짜라고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혜능의 불법이 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크게 융성했고, 지금도 그렇다는 점이다. 몸뚱아리가 있고 머리가 있고 없고의 논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6조 혜능 후 8대 마조도일로 넘어가는 수상한 법맥, 과연 7대선사는 누구? 
[중국 법맥 논란]-달마대사 이후 중국의 법맥은 6조혜능에서 바로 8조마조로 넘어가 버린다. 그렇다면 7조는 누구일까. 7조는 없다. 최근 7조는 신라인 정중무상선사란 이야길 한다. 정중무상(684~762)은 김 씨였고 김화상(金和尙)으로 불린다. 성덕왕 27년에 당으로 들어갔고 당 현종이 스승의 예로 환대하기도 했다. 당나라 때 중국 선종은 150년 간 중국 위주의 치열한 정통 경쟁이 시작되는데 이방인이었던 무상의 존재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이때 이방인 신라인 무상은 건너뛰어 버렸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쓰촨성(사천성)에 새겨진 비문 중, '정중무상증주촉도마조도일(淨衆無相曾主蜀度馬祖道一)'이란 글귀가 있다. 정중무상 선사가 일찍이 촉나라 땅의 주인이 되어, 문하에 마조도일을 두었다'는 뜻이다. 중국의 규봉종밀(780~841)선사도 ‘마조가 무상의 제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증당비(四證堂碑)>란 책에 무상(無相), 무주(無住), 마조(馬祖), 서당(西堂)이라고 적혀 있어, 이를 근거로 무상을 마조의 스승으로 칭한다는 것은 선종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류라고 한다. 무상과 마조는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동문으로 추정해 옳다고 주장한다. 이러나 저러나 혜능 이후 불교의 선맥은 신라와 인연이 깊고, 신라를 떼고 설명한다는 것은 재미가 없어져 버린다. 

▣쌍계사에서 허무함을 가르친 부처님의 뼈(사리)를 생생하게 확인한다.
[쌍계사]-쌍계사 성보박물관에는 부처님의 유골인 진신사리를 볼 수 있다. 손바닥만한 유리상자에 5과의 사리가 초라하게 놓여있다. 별 것도 보잘 것도 없는 듯하지만 위대한 성자가 죽어서 남긴 ‘뼛조각’이다. 석가모니는 인생생사가 구름이고, 구름은 원래 없는 것이라 했다. 만중생을 구제한 부처님도 아무것도 아닌 뼈 조각 5과를 남겼으니, 인생은 정말 허무하고도 허무함이다. 부처님의 ‘사리’는 장황한 설명도, 어떤 꾸밈도 없다. ‘성자의 사리도 이러한데 우리의 인생은......?’ 쌍계사에선 직접 생생하게 사리를 확인 할 수 있다. ‘삶은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쌍계사 부처님 사리는 고산스님이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가져온 3과와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진신사리 2과, 모두 5과다. 진신사리를 직접 볼 수 있는 사찰은 드물다.

□쌍계사 옥천은 남녀가 따로 마시는 물, 병이 낫는 물이다
[쌍계사 옥천]-옥천은 신비하고도 신비한 샘이다. 팔상전 앞 오른쪽에 있는 작은 샘터가 옥천이다. 그야말로 옥 같은 물이고, 영생불멸의 감로수다. 쌍계사 옥천은 차를 끓이는 물이고, 한센시병(나병)에 특효가 있는 물이었다. 쌍계사 경내에만 옥천이란 이름의 샘과 냇물이 여러 곳에 있다. 이 멋진 ‘옥천’은 한 샘터에서 2군데 물이 솟는데 하나는 양수고, 하나는 음수다. 천지는 음양으로 이뤄지고, 음양이 아닌 것이 없다. 양은 남자고 음은 여자다. 같은 극은 밀어버리고 다른 극은 끌어당긴다. 남녀가 불꽃 튀듯 만나고 사랑을 하는 것도 서로 다른 것이 끌고 당기는 음양의 조화다. 쌍계사 양수는 여성이 마시고, 음수는 남성이 마시는 것이 이치다. 하나의 샘이지만 그 물맛은 분명 다르다. 마셔보면 ‘아~!?’한다. 쌍계사 대웅전 왼쪽으로 흐르는 냇물을 또 하나의 옥천이라 한다. 또 옥천 시냇가에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솟는 샘이 있다. 이곳도 옥천이라 하는데 이 물은 특히 나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 나병환자가 몰려들자 주민들이 메워버렸다 한다. 옥천 시내를 따라 쌍계사 일주문을 나와 기념품가게 아래쪽에 도원암이 있었다. 이곳에 민가가 몇 가구 있는데 이곳도 옥천이라고 부른다. 그 아래에 화개유황약수터가 있다.

□씽계사에 ‘아이고 부처님’ 할때 그 부처님, 병을 고치는 ‘약사 부처님’도 있다.
[일주문]-옥천을 따라 쌍계사 일주문으로 든다. 까딱하면 넘어질 것 같이 위태위태하게 선, 이 전각의 기둥은 두 개뿐이다. 살아가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번뇌와 고통으로 인생을 산다. 하나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 일심으로 ‘지옥에 빠진 중생마저 모두 구원하고 성불하겠다’는 위대한 서원 하나가 ‘일심’ 같은 거다. 걸어드는 쌍계사엔 옥천이 밑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른다. 쌍계사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불도에 들어서는 첫째 관문을 뜻한다. 일주문은 일심(一心)을 뜻한다.

[쌍계사대웅전]-대웅전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계신데 중앙이 석가모니다. ‘아이고 부처님’할 때의 바로 그 부처님이다.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석가모니의 5개 사리가 있는데, 사리는 바로 이 부처님의 사리다. 이 부처님을 자세히 보시기 바란다. 모든 절에 있는 부처님이지만 쌍계사 대웅전 부처님은 너무도 인간적으로 생기셨다. 좌측이 아미타불, 우측이 약사여래불이다. 아미타불은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할 때의 그 부처님이다.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원을 품고 성불하여 극락세계에 있는 부처다. 이 부처를 주문으로 외면, 죽은 뒤에 극락세계에 간다고 한다. 정호승의 '사랑하다 죽어버려라'란 시에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고 한 그 부처님이다. 약사여래불은 사람의 모든 병을 고쳐주는 부처님이다. 병원에 의사가 있고, 쌍계사에 약사인 부처님이 있다. 빌고 빌면 모든 병든 인간을 구원하는 분이 약사여래불이다. 대웅전의 현판은 임진왜란 당시 왕이었던 선조의 일곱 번째 왕자 의창군 광이 썼다.

[화엄전]-화엄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다.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은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이란 뜻이다. 화엄전은 불교도들의 이상향인 연화장세계는 장엄하고 진리의 빛이 가득한 세계라 해 대적광전이라고도 한다. 역시 정호승 시인의 같은 시에,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고 한 그 부처님이다.

[팔영루]-팔영루는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 어산(魚山)이란 불교음악을 작곡했다. 어산은 범패와 같은 말이다. 범패는 불교의 찬불가와 비슷한 불교음악이라고 보면 된다. 팔음률이 어떤 건지 현재 전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덟 개의 소리와 음의 가락쯤으로 이해할 만하다. 진감선사는 쌍계사에 있는 국보 48호 대공영탑에 새겨진 인물이다. 우리나라 불교음악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 팔영루는 진감선사가 중국에서 불교 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훌륭한 범패 명인들을 배출한 교육장이다.

[설선당]-설선당은 스님들의 불경을 공부하는 교실이다. 적묵당은 행자승을 마치고 처음 불도를 닦는 스님이 수행하는 곳이다. 도를 통하고, 만중생을 구하고 말겠다는 초발심이 철철 넘치는 곳이다. 명부전은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으로, 지장보살을 모셨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구원할 것을 서원한 보살이다. “지옥 끝까지 가서라도 만중생을 구제하리라.” 특히 지옥에 빠지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 문전을 지키며 울고 계신다는 보살이다. 아무리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이라도 지장보살보다는 먼저 성불 하게 된다. 방송에서 승려들이 치고 박고 던지면서 싸우는 모습이 보인다. 지장보살과 같은 이런 위대한 정신이 진짜 불교다.

[금교]-금교는 원래 고목을 옥천 또랑 사이에 가로질러 놓고 다리로 이용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신라 때 최치원이 쌍계사에 심은 나무는 근 600년이 흘러 백아름이 되는 괴목이 됐다. 이 괴목이 썩어 옥천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 스님이 정원에 불을 피우다 불길이 나무에 붙은 뒤 용과 호랑이가 거꾸러진 형상이 됐다. 한 발쯤 되는 썩다 남은 줄기가 있었는데 이것을 스님들이 밟고 다녀, ‘금교’라 했다. 이 내용은 김일손의 유산기(1489)에 있다.

[금당]-옥천을 건너 영모전 뒤에 금당이 있다. 그 유명한 금당은 육조혜능선사의 머리를 모신 곳이다. 금당의 전면 좌우에 ‘육조정상탑’과 ‘세계일화조종육엽’이란 현판이 있는데 모두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다. 쌍계사 만허스님이 직접 만든 차를 선물하자 보답으로 추사가 일필휘지를 날린 것이다. 

[영모전]-영모전은 중생에게 생명의 감로수를 내린 뜻을 길이 기억하고 숭배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생명의 감로수는 불교의 진리를 말한다. 쌍계사 영모전은 창건주인 진감선사의 얼굴을 그린 그림인 진영을 비롯, 지순, 사명, 부휴, 벽송, 소요대사 등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진영이 남은 스님들은 모두 잘 생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쌍계사 마애불]-쌍계사 마애불은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특이한 모습의 마애불이라고 안내문에 적혔다. 솔직히 특이하다기보다는 '귀엽다.' 큰 바위에 툭 튀어나온 것처럼 불상을 새겼다. 굴을 파고 부처를 모신 감실과도 같은 느낌의 부처라고 하는데, 앞으로 쏟아질 듯 조는 것 같기도 하고, 마루 끝에 앉은 느낌도 있다. 동자스님 말고 소년 스님 같은 느낌이다. 머리가 크고 살집이 많은 얼굴에 귀가 어깨까지 쳐졌다. 전체적으로는 소박한 느낌의 마애불이다. 절을 하는 대신 얼굴을 쓰다듬고 싶은 부처다. 글/하동군·한국국제대학교 정리/하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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