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문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문
  • 하동뉴스
  • 승인 2023.02.0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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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미자

내가 읽히지 않는다
자동문 센서, 비켜 간 시선에

길을 막아서는 문들
통과해 낸 이력으로 반짝이는 카드 몇 장
바코드로 입력된 이름들
검문 받듯 내밀어 보아도 꿈쩍 않는다

무엇으로 더 증명할 수 있을까
벽이 된 문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뒤적거린다

-시집 『혼잣말이 저 혼자』(파란, 2021)

【시인 소개】
홍미자 / 1960년 대전 출생.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시인 등단. 시집 『혼잣말이 저 혼자』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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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벽은 한끝 차이입니다.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지요. 아니, 열려야 문이고 닫혀야 벽인가요? 아무튼 우리는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당황한 적이 많습니다. 가끔 열리지 않는 자동문 앞에서는 절망하지요. 자동문은 내 몸이 바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읽히지 않는 문 앞에서 나는 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곳곳에서 수시로 내가 나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검문을 받듯” 회사의 출입구 앞에서, 아파트의 현관문 앞에서, 심지어 내 폰 앞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카드를 갖다 대거나, 내 지문을 보여주거나 심지어 내 눈동자를 증거물로 내놔야 합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없을 때 문은 벽이 되고 맙니다.
“벽이 된 문 앞에서” 내가 나임을 “무엇으로 더 증명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나를 뒤적거”리는 현대인의 모습은 절박하고, 그 운명은 비극적이지요. 오늘도 닫혀 있는 저승문 앞에서 당신이 읽히지 않아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올해 106살, 내 어머니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은 먹먹하고 막막합니다.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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