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미스터리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미스터리
  • 하동뉴스
  • 승인 2023.02.2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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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김상미

모든 꽃은
피어날 땐 신을 닮고
지려할 땐 인간을 닮는다

그 때문에
꽃이 필 땐 황홀하고
꽃이 질 땐 눈물이 난다

- 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문학동네, 2022)

【시인 소개】
김상미 /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가 있음. 박인환문학상, 지리산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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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지는 것은 꽃의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피는 꽃의 안간힘을 안쓰러워하고 지는 꽃의 속절없음을 야속해했는데, 피는 꽃과 지는 꽃 사이에 이런 미스터리가 숨어있었네요. 꽃봉오리가 터지고 한 잎 두 잎 꽃이 열리는 순간은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것만큼이나 신비롭고 황홀하지요. 그렇게 피어난 꽃은 저마다의 색깔과 모습과 향기로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다가 어느 순간 한 잎 두 잎 떨구며 조용히 한 세계를 닫지요. 그래서 지는 꽃은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처럼 눈물겹도록 단호하지요. 
이 짧은 시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꽃이 피는 순간과 지는 순간의 오묘한 아름다움을 단칼에 베듯이 명료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모든 꽃은 필 때는 신을 닮아서 황홀하고, 질 때는 인간을 닮아서 눈물겹다는 거지요. 결국 한 송이 꽃에서 신과 인간을 같이 본다는 건데, 아마도 시인이 방점을 찍은 쪽은 신보다 인간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꽃은 지기 위해 피듯이, 신의 황홀은 결국 인간의 눈물로써 완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눈물’을 두고 “흠도 티도,/금가지 않은/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김현승 「눈물」)이라고 했나봅니다.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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