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하동에 스며들다-2
[연재]하동에 스며들다-2
  • 하동뉴스
  • 승인 2023.09.1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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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어쩌다 귀농 

2009년 1월 15일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하동으로 내려왔다. 귀농 귀촌을 수년간 준비해서 내려온 것이 아니어서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친족 간의 불미스러운 일로 선택이 아닌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번민과 망설임이 교차하는 막막함에도 아내와 가족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으로 결행을 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도시에서 횟집 주방장 2년, 제약회사 영업 3년을 제외하면 15년 동안 창고형 할인마트에서 농산물 구매팀장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곳에서 전국의 농산물 흐름과 시세, 농작물을 구분하는 방법 등을 마스터하면서 구매와 판매 등 농산물 분야에서는 어느 순간 최고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귀농 바로 직전까지 그동안의 경험을 밑천 삼아 창업한 작은 농산물 전문점 ‘과수원집 아들’을 쉬는 날 없이 경영하면서도 내 일이기에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장남인 나는 건강이 안 좋으신 모친께서 감당하실 적지 않은 농장 일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문득 아내가 “어차피 고향으로 내려갈 상황이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려가자”는 이 한 마디에 용기를 얻어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44세. 꽃다운 청춘을 뒤로 하고 인생 2막이 고향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공부해서 남 주나

막상 고향에 내려오니 할 일이 없었다. 정말 없었다. 그동안 부모님께서는 임야 일만 오천 평에 매실과 단감, 대봉감 그리고 고사리 농사를 지어오셨다. 모친을 도와 농사를 지어보니 관행농법이라 딱히 힘들지도 않았고 일 마치면 할 일이 없어 배낭에 이것저것 챙겨서 산에 가는 일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향 산천을 누비는 산행은 갑자기 귀농한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었는데, 지리산의 깊고 높은 품속은 새로운 안식처로 삼을 만 했다. 생산된 농산물을 판매하는 일이 전공인지라, 지금까지 모친께서 해오신 관행농법의 농산물은 별 어려움 없이 판매하였지만 고생한 보람이 없음을 깨우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땀 흘려 수확한 농산물을 제값을 받고 팔기 위해서는 내가 생산한 농산물의 가치를 올려야 한다는 고민이 시작됐다. 15년 전 당시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친환경 농산물을 찾기 시작했고, 농산물을 구매할 때 가족의 건강을 최우선시 한다는데 착안해 친환경 농사를 지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친환경 농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했던 나는 하동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주관하는 각종 농업인 교육에 빠짐없이 등록하고 주경야독의 시간을 보냈다. 같은 품종을 농사짓는 이웃 농업인들과 함께 친환경반, 매실연구회, 식초연구회, 강소농, 안심농 등 각종 모임과 교육을 병행하며 병해충 방제액도 자체적으로 만들어서 농사를 지은 결과 무농약을 넘어 3년 만에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SNS 활동을 꾸준히 한 결과 유기농산물 인증 첫해에 국내 유수의 유기농 식품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유기농 인증 매실의 거래가 성사되었다. 친환경 농법을 행한 결과 관행농업에 비해 몇 배로 비용과 노력이 투입되지만 그만큼의 보상과 결과물이 나왔다. 귀농 후 전문 농업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매실 납품을 앞두고 갑자기 매실이 낙과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떨어진 매실로 가득한 농장을 걸어가는데 눈물이 펑펑 났다. 귀농 후 첫 좌절의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간의 거래에서 쌓은 신뢰 덕분에 유기농 식품회사에서 유기농 매실을 구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어서 무사히 납품할 수 있었다.

 ‘농사는 사람이 짓고 수확은 하늘이 한다’는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마침 경상국립대학교에서 최고경영자과정을 모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상국립대학교의 최고경영자과정에서 공부하게 된 인연이 나의 고향 살이에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다양한 분야의 최고 경영자 위치에 있는 많은 훌륭한 선배님들의 경험과 지혜를 배웠고 여기에서 부족함을 느껴 경상국립대학교의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MBA과정을 2년 6개월 동안 밟으면서 배움이 세상을 밝고 넓게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되어줌을 또다시 느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농생명과학대학 최고농업경영자 과정 농촌관광과에 등록해 빠르게 변화하는 농촌의 현실과 소비자의 니즈를 집중적으로 공부했고 수료하면서 한 사례 발표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늘 배운다는 자세로 농업인들과 교류하며 전국의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다니면서 폭넓은 인맥 형성과 교류, 선진지 견학 등의 경험을 쌓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처음 고향으로 귀농할 때의 두려움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나는 어느새 젊은 귀농, 귀촌인들이 자문을 구하는 전문 영농인이 되어 있었다. 그즈음 군에서 하동 SNS 기자단 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등록하니 SNS기자단 자체가 생소할 때라 지원자가 많지 않아서인지 바로 제1기 임명장을 받고 활동을 시작했다. 평소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성격으로 원만하게 관계를 형성하며 하동군의 알리미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는데, 이 경험으로 1년 동안 하동 전역을 새롭게 공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 하동이 ‘슬로시티 하동’ 아닌가. 슬로시티는 처음에 하동군 중에서도 악양면 한 곳만 지정이 되었는데 2021년에는 하동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느림과 작음, 소박함이 아름답다는 슬로시티 이념을 바탕으로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가치를 실제 피부로 느끼기 위해 슬로시티 본부에서 주관한 슬로라이프 디자이너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이 전문가 과정에서 이론과 실기를 통과해 지금은 하동군의 슬로시티 시민 강사가 되어 슬로시티 이념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전문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침내 2018년도 농산물판매와 음식점을 병행하는 농업회사법인 ‘지리산 내츄럴팜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농가레스토랑 ‘지리산 대박터 고매감’을 오픈했다. 고매감의 의미는 하동의 특산물이자 농장에서 생산되는 고사리, 매실, 대봉감의 한 글자와, 식당을 찾아주신 감사의 의미를 담아 ”고맙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의 첫 글자를 따서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영업을 시작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에 승부를 걸어라”
“고이면 썩는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 “물이 들 때 노를 저어라”
“승부를 걸 때가 분명 있으니 늘 공부하고 준비해라”

지극히 평범한 말이지만 일생동안 누구에게나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그 기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 기회를 잡으려고 지금도 발버둥 치며 사는지도 모른다. 또한 기회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여건에서 늘 배우고 열린 마음으로 활동하다 보면 어느새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농사를 10년 해보니 평생 농사만 지으면 먹고는 살겠는데 골병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향 지리산에 살면서 평생 일만 할 순 없었다. 그때, 바로 ‘농가 레스토랑’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제 농산물도 내다 팔 게 아니라 손님을 농장으로 불러 들어야 한다는 생각과 평생 농사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요식업의 특성상 주방을 컨트롤 할 수 없다면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비장의 카드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평소 음식이 깔끔한 누나를 설득하고 아내의 허락을 받고부터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마침내 2018년도 농산물판매와 음식점을 병행하는 농업회사법인 ‘지리산 내츄럴팜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농가레스토랑 ‘지리산 대박터 고매감’을 오픈했다. 고매감의 의미는 하동의 특산물이자 농장에서 생산되는 고사리, 매실, 대봉감의 한 글자와, 식당을 찾아주신 감사의 의미를 담아 ‘고맙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의 첫 글자를 따서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마치고 영업을 시작했다. 농가식당을 오픈하면서도 늘 지금까지 새기는 “처음처럼, 변함없이, 한결같이”를 마음에 담아 어느덧 5주년이 되었고 각종 지역행사나 소연회 등 하동 방문 시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으로 등재되어 많은 여행객들의 힐링 공간으로 발돋움 하고 있다. 요즘 추세는 먹거리를 비롯한 생활에 웰빙 바람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식당은 맛이 제일이 아니고 위생과 청결이 최고의 덕목이며, 두 번째가 편안한 공간이고, 그 다음이 음식의 맛이라 생각한다. 나는 농장을 설계하는 팜 디자이너로서 오시는 손님께 정서적으로 안정감과 치유를 위해 오늘도 눈코 뜰 새 없이 청소하고 잡초 뽑고 과실나무 손질하고 식당 손님께 서빙 하느라 분주하다.

-일은 전공 필수라면 취미 활동은 전공 선택이다

최고의 응대는 건강한 신체와 마음에서 나온다. 농부는 땅을 보고 살지만, 가끔은 하늘도 보고, 들녘도 보고, 벗도 만나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며 때론 일이 아닌 운동으로 온몸이 젖고, 주민들과 허심탄회하게 술도 한 잔 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시골 살이가 주는 최고의 행복 아니겠는가. 농사와 식당을 병행하는 바쁜 와중에도 나는 혼자서도 마라톤, 걷기, 산행, 사진 출사, 자전거 타기 등 즐거운 취미를 많이 만들고 즐기고 있다. 앞으로도 몸은 바쁘지만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전문 농업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악양면 서 훈 기 글/하동군 제공·정리/하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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