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철심
[김남호의 시로 여는 세상] 철심
  • 하동뉴스
  • 승인 2023.09.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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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심

                             고영민

유골을 받으러
식구들은 수골실로 모였다

철심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분쇄사가 물었다

오빠 어릴 때 경운기에서 떨어져
다리 수술했잖아, 엄마

엄마 또 운다

영영 타지 않고 남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분쇄사는 천천히
철심을 골라냈다

-시집 『봄의 정치』(창비, 2019)

【시인 소개】
고영민 / 196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02년 《문학사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악어』 『공손한 손』 『구구』 『봄의 정치』 가 있음. 지리산문학상, 박재삼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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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한 생애가 화장장에서 한 줌 재로 바뀌는 데는 59분 걸린다고 합니다. 아등바등 살아온 시간이 채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재로 사라지는 것이지요. 형이 죽어서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합니다. 가족들은 수골실에서 유골을 받으려고 모였습니다. 타고 남은 뼛조각들을 수습해서 분쇄하던 분쇄사가 뼛조각 속에서 철심을 발견합니다. 고인도 자신의 몸속에 철심이 박힌 것을 잊고 살았을 텐데, 죽고 나서야 드러난 것이지요. 몸의 주인은 죽었는데,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흩어지고 없는데, 사리도 아니고 유골도 아닌 이 유품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엄마는 철심에서 자식의 어릴 적 상처를 떠올리고 울었겠지만, 철심의 내력을 잘 모르는 형제들은 뼛조각이 아닌 쇳조각에 당황했을 것입니다. 타지도 않고 남아서 오래전 상처를 증거하는 철심처럼, 우리의 육신이 한줌 재가 되었을 때 타지 않고 남아서 생애의 일부나 전부를 증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남기느냐는 어떻게 살았느냐와 같은 뜻일 겁니다. 바꿔 말하자면, 단단한 것을 남기기 위해서는 그만큼 단단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죽음은 결국 삶의 연장일 테니까요.

(김남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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