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 소리] 법정스님의 눈물
[노년의 고동 소리] 법정스님의 눈물
  • 하동뉴스
  • 승인 2019.07.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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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쯤 섬진강변에는 매화 꽃이 많이 피었지?”. 매년 섬진강을 찾아 매화 향기를 즐기던 법정스님이 해탈(解脫) 직전 병상의 그를 찾은 하동 어느 차인(茶人)에게 던진 말이었다. 그 차인은 오직 하동 차만 즐기는 법정 스님과 차로 인연을 맺은 젊은이였다. 나는 86년도 서슬 시퍼렇던 5공 군사 독재 시절 모 일간지에 실렸던 법정의 칼럼을 처음 읽고 ‘요즘 세상에 참으로 간 큰 스님이 있구나’ 싶었다.

물 만난 쏘가리 떼처럼 걸리는 대로 물어뜯던 군부세력 시대. 법정은‘역사는 되풀이 되는가’라는 제하에 이렇게 설파했다. ‘오늘날의 정치는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불학 무식한 깡패들이나 하는 직업이 오늘날의 정치다.’ 이후 나는 그가 썼다는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었다. ‘무소유’는 1999년 정가 6000원에 샀다. 밤새워 읽었다. 마음을 울리는 글이 많아 나도 모르게 자주 눈시울이 젖곤 했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1959년 효봉 선사를 모시고 하동 쌍계사에서 삼동(三冬) 안거를 할 때였다. 선사는 네팔에 출장 중이라 혼자 지냈다. 시월에 악양에 내려가 집집마다 기웃거리며 탁발을 했다. 닷새 동안 악양면을 돌면서 얻은 걸로 겨울 양식은 넉넉할 것 같았다. 늦게 암자에 돌아오니 낯선 나그네 스님 한분이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호남 사투리를 쓰는 그는 나이가 나보다 한살 모자랐으나 출가는 그가 한해 먼저였다. 그는 교육은 많이 받은 것 같지 않았으나 성품이 매우 차분해 보였다. 승가 예절상 지나온 자취는 서로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소화 기능이 약한지 제대로 먹지를 못해 몸이 말라 보였다.

둘이 참선을 하는데 하루 한끼만 먹기로 했다. 나는 밥 짓는 일을 맡고 그는 국 끓이고 반찬 만드는 일을 하며 끼니를 이었다. 그의 반찬 만드는 솜씨가 매우 좋았다. 그렇게 정진하며 그 해를 잘 넘겼다. 이듬해 정월 보름날이 안거가 끝나는 해제일. 해제가 되면 행각을 떠나 여기 저기 절간 구경을 다니자며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해제 전날부터 나는 몸이 아파 눕고 말았다. 찬 개울물에 목욕을 한 게 탈인가 싶었다. 열이 오르고 오한에 구미가 뚝 끊어졌다. 우리는 철저하게‘무소유’라 병을 치료할 방도가 막연하였다. 속세에서 함께 살던 어머님 얼굴이 눈에 얼른 거렸다. 가진 게 없어 의료기관에 가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밤이면 헛소리를 친다는 내 머리맡을 지키던 그 도반(道伴)은 목이 마르다면 물을 떠오고 이마에 찬 물수건을 갈아 주느라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도반은 잠깐 아랫마을에 다녀오겠다며 나갔다. 해가 저도 돌아오질 않았다. 쑤어둔 죽을 저녁까지 먹었다. 밤 열시가 넘어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새 나는 잠이 들었다. 그가 방문을 열고 들어 올 때 그의 손에는 약사발이 들려 있었다. “너무 늦었다!” 면서 약을 어서 마시라는 것이었다. 그 때의 일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허약했던 그의 정성에 나는 약사발을 앞에 놓고 엉엉 울고 말았다. 그는 내 손을 꼬옥 쥐고 말이 없었다. 그 도반은 새벽에 암자를 나서서 걸어서 구례까지 가며 탁발로 동냥을 얻어 약국에서 약을 지어 오느라 늦었던 것이다. 교통편이 어려웠던 때라 구례장날이면 트럭을 얻어 탈수는 있었으나 그날은 장날이 아니라 80리길을 걸었다는 것이었다. 이튿날부터 일어설 수가 있었다.

전남대 상과 3년 수학 중 마음을 고쳐먹고 출가한 법정은 28세 때 쌍계사 서방장에서 효봉선사를 모시고 수행했었다. 그는 2001년 펴낸 ‘산방한담’에 옛 시절의 쌍계사를 다시 찾은 느낌의 글을 실었다.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라고 쓴 일주문의 낯익은 편액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 때 그 도반이 그립다! . 하동에서 평생 못 잊을 추억을 만들고 오직 하동 차만을 즐기며 섬진강변 매화꽃을 못내 그리워하며 하동을 알아보던 법정 스님이었다. (사)대한노인회 하동군 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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