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동소리]East Sea(동해)
[노년의 고동소리]East Sea(동해)
  • 하동뉴스
  • 승인 2019.11.11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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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초가을이었다. 북유럽 여행길에 노르웨이의 세계적인 명소 송네 피요르드를 찾아 봤다. 노르웨이는 빼어난 자연 경관으로 전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 외화를 많이 벌어들인다 했다. 빙하가 흘러내리며 만든 송네 피요르드 풍치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일품이었다. 협곡에 자리한 레디알 이라는 호텔에서 밤을 새우고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만발한 보라색 라일락꽃이 매우 매혹적이었다. 선착장에 들려 유람선을 타려고 기다리는 승객들의 대기실을 둘러 봤다. 관광 상품들이 손님을 유혹하는 것 같았다. 지구상의 여러 인종들이 뒤섞여 옹기종기 떼를 지어 떠들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한 쪽 벽에 기대져있는 관광 홍보물 진열대를 살폈다. 홍보물은 영어로 된 리플렛이 주를 이뤘고 일본어판도 있는데 한국어로 된 광고 안내물은 없었다. 나는 ‘역시 우리나라는 아직 미치질 못 하는구나’ 싶었다. 이리 저리 살피는 가운데 세계지도를 발견하였다. 인쇄가 선명하고 종이도 매우 매끄럽고 질겨 보였다.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런데 몸에 힘이 쭉 빠져버리는 느낌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가 배웠던 ‘East Sea(동해)’는 눈을 닦고 봐도 없고 그 자리에 ‘Sea of Japan(일본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해’라니 허탈 서러웠다. 잠시 뒤에 가이드를 대동하고 승선 대기실 종업원에게 물어 봤다. “여기 세계지도는 누가 갖다 놓느냐? “아마 일본 문화원에서 갖다 놨을 겁니다.” 종업원의 꾸밈없는 대답이었다. 당장 이해가 됐다. 얼마나 철저하고 약삭빠른 일본인가. 일본의 제지 기술과 인쇄술은 세계 으뜸이라 했다. 일본해 가운데 떠있는 ‘독도’는 누구 땅일까.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이 ‘독도는 한국 땅이다’라고 편들어 주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절경 송네 프요르드 협곡에서 나는 ‘안 볼 것을 봤다’는 씁쓸한 마음에 젖어 버렸다. 그런 얼마 뒤 영국 런던에서 한국 대사관을 찾았다. 대사관 여직원에게 요청했다. “세계지도 보여 줄 수 있습니까?” 여직원은 순간적으로 반갑잖은 눈빛이 되어 나를 처다 보더니 “동해 때문에 그러시죠?” 했다. 나는 속으로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기는 되는 모양이구나’싶었다. 나는 언급 결에 ‘그렇다’고 해 버렸다. 여직원은 ‘지금은 세계 지도가 없다’며 매우 민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낯을 붉힐 수도 없어 ‘알겠다’ 하고 입을 닫아 버렸다. 그런 뒤 우리 고장 어느 사립 고등학교 실내 체육관에 들렸다. 한 쪽 벽에 커다란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다. 지도가 영문 판이었다. 나는 수상스런 예감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East Sea (동해)’를 찾았다. 역시 없었다. 선명한 ‘Sea of Japan’이 눈을 자극 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한국의 고등학교에 동해가 빠진 세계지도를 붙여 놓다니! 친분이 있는 학교 교감 선생님에게 “저 지도 치워야 되겠소!” 하고 이유를 말했다. 교감 선생님도 처음 발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최근 들어 동해에 ‘동해’와 ‘일본해’를 같이 넣기로 했다는 말이 들리긴 하는데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세계지도를 세계 각국에 어떻게 알릴 것인지 살펴 볼 일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외침이 허공 속에 울리는 빈 울림으로 들린다. 사)대한노인회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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