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의 고동소리] 표만 노리는 망언(妄言)
[노병의 고동소리] 표만 노리는 망언(妄言)
  • 하동뉴스
  • 승인 2020.03.1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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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가 임박한 정치의 계절에는 별일이 많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 공천제를 처음 실시한 선거는 1954년 5월 20일에 치른 제3대 국회의원 선거 때 부터였다. 그 시대 대통령인 자유당 총재 이승만(李承晩)은 전국의 선거구 마다 자유당을 업고 나선 정치 지망생들을 하나하나 살펴 공천장을 직접 주며 손을 잡아 주었다. 나이 80에 이른 이승만의 머릿속에는 3대 국회에 자기 수족을 많이 심어, 자신의 영구 집권 개헌안을 반드시 통과시키려는 목표가 숨어 있었다. 공천장을 받아 든 후보자들 가운데는 이승만의 숨은 뜻이 담긴 공천장을 마치 국회의원 발령장처럼 여긴 팔푼이도 있었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날뛰어 표만 많이 얻으면 국회의원이 되고, 일단 국회의원 신분증만 받으면 만사가 풀리게 돼 있다는 생각들이었다.

 3대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입후보자들은 합동 연설회를 통해 ‘공약’을 발표, 유권자들 마음을 끌어야 했다. 선거 경험이 전혀 없는 풋내기들은 서툰 연설로 청중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고, 심지어 사법적 판결을 받아야하는 범 법적 발언을 떠벌리기도 했다. 1954년 4월, 선거가 임박했던 시기, 충남 부여군 부여 갑 선거구의 구룡면(九龍面)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날 합동정견발표회장에서 유권자들은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을 들었다. 자유당 공천을 받은 기호 1번 한광석(韓光錫)이라는 후보가 맨 먼저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헌데 연설 내용이 괴상 망칙했다. “… 에,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당이 공산당이라 하고 여러분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 농민을 위한 당이 어디 공산당 뿐이냐? 자유당도 있다 이 말이에요! 자유당은 노동자 농민을 위해서 만든 당이에요! 공산당과 꼭 같이 노동자 농민을 위하는 정당이에요!…” 청중들은 헷갈렸다. ‘자유당도 노동자 농민을 위하는 공산당과 같다는 말인가?’

 공산당이라면 이가 갈릴 지경인 유권자들이 정신을 가다듬기 전에, 한광석은 한 번 더 대못을 쳤다. “여러분! 내 말은 자유당도 노동자 농민의 정당이라 이 말씀이에요!” 자유당도 공산당과 같다는 망언이 정견발표회장을 들썩이게 했다.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던 유권자 가운데 신문지국을 경영하는 한 언론계 종사사가 있었다. 그는 재빨리 본사에 이런 제목의 기사를 보냈다.

‘자유당은 대한민국이 공인한 공산당’이라는 제하에, 한광석 후보의 연설문 내용을 실었다. 기사가 나가자 세상이 발칵 뒤집힌 듯 했다. 유권자들은 ‘자유당도 공상당과 같다고!?’ 즉각 신문을 몽땅 수거해버린 경찰은, 기사를 쓴 지국장을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구속하고, 면민들을 찾아다니며 ‘그런 연설 들은 일이 없다’는 연설 청취 소감문을 받아 내기에 바빴다. 한광석은 옛날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지식인이었다. 대한청년단 부여군 단장을 역임한 반공투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연설은 다분히 목적이 있었다. 연설회가 열린 구룡면은 지난날 6·25 동란 때 공산당에 빌붙었던 부역자가 수두룩했던 이른바 불온(不穩) 지역이었고, 근처에 준동했던 빨찌산 두목도 구룡면에 오랫동안 숨어 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사상적으로 문제가 많던 선거구였다.

 하지만 투표장에 나오면 똑 같은 한 표씩을 행사할 것이니, 한광석은 그들의 표를 노려 정신 사나운 망언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한광석은 무소속 이석기(李錫基) 후보에게 패하고 말았다. 구룡면에서 한광석의 표가 어떻게 나왔는지는 밝혀지질 않았다. 표를 구걸하는데 정신이 팔릴 정치의 계절, 망신당하는 언행을 우려할 때다. ㈔대한노인회 하동군지회 지회장 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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